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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첫날 밤

[vol.2 : 미칠 광(狂)] 영화 <프랭크> 그만해, 이 미친 놈들아!

[vol.2 : 미칠 광(狂)] 영화 <프랭크그만해, 이 미친 놈들아!

 

 

 

 

 

나의 8월은 한단어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음악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 작년, 가난한 씨네필이었던 나는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나 눈을 여러번 굴린 끝에 '영화제 자막팀 자봉'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운좋게도 합류하게 되어 2년째 인연을 이어오는 중. 삶과 음악을 다루는 영화들을 하루 최소 10시간 넘게 질리도록(물론 질리진 않는다) 볼 수 있다. 올해도 상영관 지박령이 되어 하루 5편의 영화(사실상 하루종일이다)를 소화했는데, 솔직히 너무 많은 자극이 밀려와서 힘들어 무뎌지기도 하고 '영화가 나인가, 내가 영화인가'를 진지하게 헷갈리기도 한다. 피곤해 죽겠는데 실험영화나 다큐영화를 보게 되기라도 하면 '으아- 어떻게 졸음을 참지?'하는 생각에 지레 지치기 마련. 그렇게 수많은 영화와 음악들이 지나가는 가운데 유독 눈을 부릅뜨며 자세를 고쳐잡게 하고 귀를 쫑긋 세우게 했던영화제가 끝나고 지금까지 무려 열흘 내내 귓가를 떠나지 않아 나를 괴롭게 하는 그 영화,바로 <프랭크>(2014)다. 

 

 

 

 

프랭크 예고편(선댄스는 언제나 옳타! 이런 취향저격꾼...☆★)


 

웃는지 우는지 모를 무표정의 커다란 가면을 쓰고 다니며 씻을 때마저 가면을 벗지 않을 뿐더러 식사는 식도에 연결한 호스로 유동식을 섭취하며 대신한다. 괴상한 단어들을 조합하여 가사를 만들고 멤버들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으며 자신 안의 음악을 해방시키길 요구하는 프랭크. 게다가 발음하기도 힘든 그의 밴드 '소론 프르프브스'의 멤버들 또한 결코 평범하지 않은데, 테레민이라는 요상한 신디사이저를 연주하는 클라라는 그야말로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야'라고 외치는 듯한 캐릭터로, 내킬 때마다 폭력을 일삼고 독설을 퍼붓지만 프랭크와 서로를 보완하며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드러머 나나와 기타 바라크는 어떻게 보면 자신들을 인정하고 이 둘의 천재성에 의지하는 듯 보이지만 그렇기에 밴드 내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다. 매니저 돈은 프랭크의 천재성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으며 마네킹과 섹스하는 성도착증 환자이다. 보다보면 '그만해, 이 미친놈들아!'를 절로 외치게 되는데, 이 환상적인 조합에 비극적으로 평범한 뮤지션 지망생 '존이 우연히 들어가게 되면서 밴드에는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모두들 프랭크를 동경한다.’



모두들 프랭크를 동경한다. 영화상에서 프랭크가 음악을 탄생시키는 과정은 가히 감탄을 자아낸다. 경이로울 지경. 그의 괴벽은 빛나는 재능에 의해 매력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그의 재능에 대해서 탐구하던 존은 프랭크가 정신병원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고 그의 재능이 과거 그의 환경과 어릴적 일어난 어떤 사건 그리고 그것을 음악으로 이겨내는 고뇌의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멤버들이 평범한 존을 받아들이지 않는 가운데, 그는 자신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가며 프랭크가 되고자 하는데. 영화는 프랭크가 되고자하는 인물들의 불행을 차례로 보여주며 마지막에는 프랭크의 불행을 들여다본다. 과연 그의 재능은 축복일까?

 

 

작년 ‘팀버튼전’을 관람하고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 모든 창작물들은 그의 우울과 불안의 산물이라고. 그리고 그가 가진 특별한 감수성이 세상과 그를 분리시켰을 때, 그래서 극도의 소외에 시달릴 때,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분류하여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 감수성에서 돈을 주고 위로를 받고 있다. 그는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그 괴로웠던 시기에 있는 그대로의 팀버튼을 사랑해 줄 어떤 이를 만나는 편이 더 행복했을까, 고통에 몸부림치며 그 시기를 견뎌내며 토해냈던 작품들로 인해 훨씬 많은 사람들이 그 암울을 동경하고 사랑해주는 지금이 더 행복할까?

 

 

 

 

아, 미친 천재들은 불행하다.(인정받기 전까지일 수도) 예술가의 광기를 대할 때 사람들은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다가가기에는 부담을 느끼지만 그의 몸부림을 통해서 작품으로 여과되어 나온 것을 대할 때는 그 독창성에 전율하며 자신들과 다르다는 데에서 경외심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근원은 대체 어디에 있을 것인가? 도대체 어떻게하면 그들처럼 자신만의 색을 찾아내고 그게 우연히 대중성까지 겸비해서 사랑받을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바로 존이 했던 고민이자 <프랭크>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누군가는 혐오스럽지 않으면 철학자와 예술가가 아니라고 했다. 헤밍웨이는 일생동안 ‘자신은 작가이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아했고, 전쟁광이었으며 심한 여성편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결국에는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차이코프스키도 평생을 동성애로 조롱받고 조울증에 시달리며 사람들의 증오를 견디다 비소를 마시고 자살했는데, 그의 친구들이 조직한 ‘명예법원’에 의해 자살을 권고 당했다는 가설이 유력하다.

 

 

예술가들의 광기에 대한 혐오와 그들의 자살.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이다. 음악계에 공공연히 언급되는 마의 27세는 또 어떤가? 지미 핸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그리고 에이미와인하우스. 모두 살아있는 동안 그들이 지닌 광기로 인해 대중들의 큰 관심, 사랑을 받았지만 일부의 혐오 또한 수반될 수밖에 없었고 끝은 자살로 맞았다. 행복한 사람들이 자살을 하지는 않을 터. 영화 속의 프랭크 또한 자주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마지막엔 그만...(스포는 혐오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여기까지, 자살은 아닙니다.)

 

 

 

예술가에게 축복이라고도 일컬어지는 광기가 가진 무게가 얼마나 큰지 조용히 짐작해볼 따름이다. 영화 속에서 광기가 예술이 되는 지점 또한 매우 흥미로운데 그것은 그 광기를 있는 그대로 내버려둘 때이다. 존이 작곡한 것을 들으며 매니저 돈이 ‘나도 알아, 구린 곡만 나오는 그 기분.’이라 말하고선 자신이 오래전 작곡한 곡을 들려주는 신에서 사실 나는 ‘뭐야, 좋은데?’라고 생각했다. 아주 오래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아마 프랭크를 만나기 전이었을 것이다. 그가 피해망상과 열등감에 망가지며 누군가를 따라하기 전에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던 바로 그 때. 오리지널리티는 독창적인 무언가를 따라할 때 발생되지 않는다. 자신 안에 있던 어떤 것이 자연히 발현되는 것이다. 그 실패는 프랭크 또한 반복한다. 존이 밴드의 영상들을 SNS에 게재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

게되어 소론 프르프브스는 SXSW 무대에 설 기회를 얻게되는데,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프랭크를 부추겨 존은 대중적인 음악을 요구한다. 바로 그 때, 프랭크의 오리지널리티는 훼손됐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웃음을 유발하는 이런 괴상한 곡이 탄생한다.

 

 

저런. ‘도대체 그래서 이 재능의 정체가 뭐라는 거야? 어떻게 하라는 거야?’하는 의문을 참을 수 없을 때쯤. 우리는 잃어버렸던 프랭크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를 찾아가는 길,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영화의 첫부분에 존이 자신의 집으로 가는 길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들이 그대로 반복된다. 걸어가는 여인들, 자전거를 타고가는 소년, 세차를 하며 눈인사를 하는 아저씨까지. 그 순서, 그 미장센 그대로. 그렇게 도착한 집에서 프랭크를 다시 만나고 그의 부모님과 나눈 대화에서 그는 그가 프랭크 재능의 근원이라 생각했던 광기를 일으켰던 어떤 특별한 발화점따윈 없다는 것을, 그의 유년기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고 프랭크는 평범한 인간이며, 어쩌면 그의 재능은 그저 타고난 기질인 정신병이 다른 어떤 상황과 결합되면서 발현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 그는 아마 ‘너는 클라라가 아니야’라고 했던 프랭크의 말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프랭크 역시 똑같은 인간이었으며, 평범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 극한의 상황따윈 없었다는 것. 그 모든 것은 오로지 그의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는 것. 그의 재능이 후천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통해 무엇을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영화 마지막씬 ost 'I Love You All'

(어떤 미친 사람이(?) 엔딩씬 클립을 그대로 올렸던데 매너가 아닌 듯하여 음원만 링크되어 있는 영상을 첨부합니다.)

 

 

<프랭크>는 기본적으로 코미디인만큼 쉴 새없이 웃게하지만 동시에 가볍지많은 않은, 일종의 씁쓸함을 가져다주는 음악영화이다. 기본적으로 음악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밴드 멤버들 사이의 미묘한 심리도 잘 표현해낸 것도 그렇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영화 속 음악들도 하나같이 훌륭하다. 프랭크를 연기한 마이클 패스벤더의 목소리가 이렇게 섹시한 줄은 미처 몰랐는데, 영화제 최고 비주얼이었음에도 러닝타임 내내 가면을 쓰고 나왔기 때문에(...본격 외모낭비, 하지만 그럼에도 연기를 잘한다는 게 함정) 오히려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묵직하고 탁하면서도 때로 신경질적이고 때로 따뜻한 와중에 의외의 서정성이 돋보이는 목소리. 소론 프로프브스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사이키델릭과 일렉트로닉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종종 들려주는 어쿠스틱에도 잘 어우러진다. ‘그들은 불행하고 좇다보면 더 불행해진다, 천재는 천재일 뿐 따라하지 말자’가 주제인 건가? 어쨌거나 중요한 건 <프랭크>의 OST들이 영화제 기간까지 포함하면 근 10일동안 징그럽게도 귀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9월 중 정식으로 국내 개봉된다고 하던데. 그래서 OST는 대체 언제 발매된다는거야? 빨리 내놓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