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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첫날 밤

[vol.1 : 첫] 바다를 이불 삼아, 음악을 바람 삼아




 집에서 걸어서 3분 남짓한 거리에 다대포 해수욕장이 있다. 원래는 허허벌판과 극악한 수질, 열악한 교통과 지리의 좋지 못한 시너지로 인해 사람의 발길이 거의 없다시피 한 곳이었다. 우스갯소리로, 현재는 삼락강변공원에서 열리는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이 2002년부터 2010년까지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열렸었는데, 동네 친구들끼리 했던 말들 중에서 '다대포 해수욕장은 1년에 록페스티벌이 열리는 이틀 동안 오는 사람 수가 나머지 363일 동안 오는 사람 수를 다 합친 것보다 많을 것이다.' 라는 말까지 있었으니까. 실제로 고등학생 때 봄가을에 바닷가에 내려가면 백사장 전역에 단 한 사람도 없는 공포스러운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고, (겨울이 아니고 봄가을. 겨울에는 말할 것도 없다.) 해수욕장 개장 시즌의 뉴스를 보면 해운대에 하루에 몇십만이니 백만이니 하는데 다대포는 1주일에 천 명이 채 안되는 굴욕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굴욕과 고통의 시간 이후 다대포 해수욕장에 대대적인 리빌딩이 진행되면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까지 한 낙조분수가 설치되고 산책로와 공원 조성까지 이루어지면서 지금의 다대포 해수욕장은 바다도 아닌, 그렇다고 공원도 아닌 애매한 상태가 되긴 했지만 배산임수? 그냥 한군데 다 때려 박아 그래도 굉장히 갈 맛 나는 곳으로 변했고, 관광객의 수도 이전에 비해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집에서 바라본 다대해수욕장.

 그중에서도 단연 백미는 낙조분수. 정식 명칭은 '다대포 꿈의 낙조분수'로, 최대 지름 60m, 둘레 180m, 최고 높이 55m에 육박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분수로, 앞에서 언급했듯이 기네스북에도 등재가 되어 있다. 낙조분수의 하이라이트는 음악분수 공연으로,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8시~8시 반, 9시~9시 반 두 차례에 걸쳐서 진행된다. 분수와 조명과 음악이 어우러져서 환상적인 무대가 펼쳐지는데,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서 사연과 신청곡도 신청할 수 있고 신청곡이 부족한 경우에는 로테이션과 장르를 고려하여 다양한 노래들이 나온다. 음악과 조명이 어우러지는 분수 공연은 보는 이들에게 큰 감동을 심어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멋진 공연을 직접 가서 본 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사람 많고 북적 북적 거리는 것보다 사람 없이 조용한 것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긴 하지만, 결정적으로 굳이 바닷가까지 내려가서 볼 필요가 없이 집에서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살고 있는 집이 해수욕장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여서 방의 창문만 열면 첫 번째 사진처럼 바다와 분수가 한눈에 보인다. 굳이 먼(?) 길을 가지 않아도 집 안에서 편안하게 볼 수 있고, 집에서 내려다보기 때문에 두 번째 사진처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게으른 스스로를 변명한다. 거리 차이로 인해서 노랫소리가 이중 삼중으로 들리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멋진 곳이 가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대포 낙조분수 공연 사진.

 변함없이 분수 공연이 한창인 어느 날 저녁, 바닷가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반사적으로 노래 가사를 흥얼거렸고, 거실에서도 아버지의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에서 나온 나와 아버지의 눈이 마주치고, 서로 씩 웃었다. 부자지간에 있어 특별했던 노래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외로운 물새가 되고 싶었던 부자 간의 노래. 바로 오늘 '첫' 글의 재료가 될 '바다에 누워'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다에 누운 첫 번째 물새

 '높은음자리'의 '바다에 누워'. 너무나도 잘 알려진 명곡으로, 1985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동의대학교의 김장수 & 임은희 2인조로 구성된 '높은음자리' 팀이 부른 노래이다. 글을 쓰면서 85년 대학가요제 입상 음악들을 찾아서 들어봤는데, 좋은 노래들이 굉장히 많았다. '풍년 굿', '신입생', '윷놀이' 같은 명곡을 포함해서(여담으로, 방금 언급한 세 곡은 모두 당시 고등학교 교사였던 이은집씨의 작사였다. 한 번에 세 곡을 입상시키다니..) 훗날 유명한 가수가 된 원미연 씨의 '들녘에서'라는 노래도 있었으나, '바다에 누워'는 다른 곡들을 누르는 포스가 있었다. 서정적인 가사, 두 남녀의 하모니는 충분히 대상을 탈 만 했고, 이후에도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 재해석하기도 했다. 

 '높은음자리'의 김장수 & 임은희 팀은 출전 당시 동아리 친구라고 밝혔으나, 나중에 과거 동거를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있었다고 한다. 둘 사이에 문제가 생겨 임은희 씨가 밝혔다는 이야기를 아버지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현재 임은희 씨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지만, 김장수 씨 같은 경우는 라디오나 케이블 방송에서도 한 번씩 얼굴을 비추기도 한다.

 태어나기 4년 전에 세상에 알려진 노래가 '첫' 사연의 BGM이 된 데에는, 이 노래가 여러 가지 처음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음악을 좋아했다. 아버지의 노래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어머니와 동생 역시도 가무를 즐겼다. 덕분에 어릴 때부터 가족이 함께 노래방을 가는 일이 많았고, 당시의 노래방의 부가기능 중 하나인 녹음테이프들이 집에 굉장히 많았다.(노래를 부르는 동안 카운터에서 카세트테이프로 녹음을 해줘서 나갈 때 주는 방식이었다. 카세트테이프에는 노래뿐만 아니라 안에서 했던 이야기들 또한 적나라하게 녹음되어 있어서 세월이 오래 지난 지금 들어도 재미있다.) '바다에 누워'를 처음 듣게 된 것도 노래방에서였다. 중학교 1학년 때였나, 아버지의 목소리로 처음 들은 이 노래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이런 노래가 있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 너무나도 컸다. 그리고 1년 뒤, 이 노래는 아버지와 함께 부른 '첫' 노래가 되었다. 온 가족이 노래방을 갔던 어느 날 아버지가 함께 부르자고 제안을 하셨고, 15년 만에 처음으로 이루어진 부자지간의 듀엣곡이자 생애 첫 듀엣곡이 그날 탄생했다. 11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마지막 소절이 끝나고 난 뒤에 느꼈던 그 짜릿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이후로 듀엣이나 트리오에 한창 빠져서 화성학 공부나 하모니 콜라보에 혈안이 되기도 했다. 그때의 감동과 그 후폭풍으로 인해 공부했던 지식과 내용은 아직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운명처럼 만난 노래를 처음으로 내 목의 것으로 만든 순간이었다.

 처음으로 MP3 플레이어를 사용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아버지의 회사에서 명절 선물로 준 것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단종된 IAudio G3 256mb 모델이었다.(놀랍게도 지금도 건전지를 넣으면 작동이 된다.) 당시에 MP3 플레이어 붐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기에 굉장히 귀하고 비쌌었는데, 운이 좋게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음원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아 mp3 파일을 불법적인 경로로 받았었는데(이제 와서 뒤늦게 사과드립니다...는 아마 안될 거야) 가장 처음으로 받은 노래가 바로 '바다에 누워'였다. 오래된 노래라서 찾는 데 좀 어려움이 있었는데, 끝내 찾아서 받았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TV나 라디오에서만, 그것도 자주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간헐적으로밖에 들을 수 없었던 노래를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기뻤다.

 음악을 오래 곱씹지 못하는 탓에 MP3(지금은 폰)의 음악이 정말 자주 바뀌는 편이다. 한두 번 듣고 빼놓는 곡도 있고(지우지는 않고, 컴퓨터에 보관한다. 이후에 생각이 날 때 다시 넣는 경우도 부지기수.) 정말 오랫동안 듣는 곡도 있는데,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지우거나 빠지지 않았던 곡이 세 곡이 있다. MP3가 바뀌고,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되었지만 세 곡은 항상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내 귀를 즐겁게 해 주었는데, 그중에 한 곡이 바로 이 '바다에 누워'이다. 바다가 좋았던 것일까, 한 마리 물새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바다를 끼고 산 지 정말 오래된 것이라서 그럴까. 요즘 좋아하는 노래들과는 그 궤를 달리 함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내 귀를 즐겁게 해 주고 있는 노래이다.


물새들의 이야기


 앞에서 언급했듯, '바다에 누워'는 이후에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된 노래이다. 려욱, Homme 등 많은 리메이크곡들 중에서 유달리 정이 가는 노래는 JK 김동욱과 MC 스나이퍼가 함께 불렀던 버전이다.

 불후의 명곡 2014년 7월 5일 여름특집 1탄에서 선보인 무대로, 438표라는 역대 3위에 해당하는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불후의 명곡 전까지는 JK 김동욱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다. Stevie wonder가 인정한 몇 안 되는 한국 가수이자 솔풀한 중저음이 돋보인다 정도였는데, 이 무대를 보고 그 생각이 확 바뀌게 되었다. 진중한 중년의 발라드 가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에너지와 리듬감, 래퍼인 MC 스나이퍼와 함께 만든 빠르고 신 나는 노래.(스나이퍼야 워낙 명불허전이니까)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두 사람이 함께 부르는 랩. 전체적인 구성이 JK 김동욱의 보컬과 MC 스나이퍼의 랩이 교차되지 않고 따로따로 이어지는 구성이라서 보는 내내 딱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이 부분이었는데, 가장 마지막에서 그 아쉬움마저 충족시켜줬다. '저 바다에 누워, 이 세상을 넘어, 이 무대를 누벼'라는 짧은 랩 소절 두 번이지만, JK 김동욱이 온몸으로 리듬을 즐기며 스나이퍼와 함께 부른 랩은 정말 전율이 왔다.(백스테이지에서 경악하던 신보라의 표정이나 내 표정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 방송을 보고 난 후 JK 김동욱의 다른 영상들을 더 찾아봤는데, 불후의 명곡 이문세 편에서도 끼를 마음껏 발산했었다. '그대 나를 보면'을 빠른 록으로 편곡했는데, 숨겨왔던 나의 소중한 숨겨왔던 댄스 실력을 마음껏 뽐내며 참가자와 방청객과 시청자 모두를 경악시켰고 심수봉 편에 이어 2주 연속 우승을 차지했었다.(여름특집 우승이 5번째 우승.) '바다에 누워' 때도 춤까지는 아니었지만 비트에 맞춰 몸을 흔들고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멋진 가수라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사람들의 틀을 깨 버리는 그의 용기가 부러웠다.


물새는 바다에 누웠건만


 짧은 장마가 지나가고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었다. 다대포는 그래도 바다 동네라 그런가 시내보다 버틸만함에도 불구하고 더운 것은 매한가지이다. 바닷가에 낮이고 밤이고 사람들이 많고, 낮에도 음악 없이 물을 뿜어내는 분수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이맘때 즈음엔 다대포 해수욕장에서도 이것저것 많은 행사들이 열린다. 분수 공연을 포함해서 각설이 공연, 워터파크를 가장한 아이들 수영장, 각종 노점상 및 부스, 바다축제나 노래자랑 등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기가 넘쳐난다.

 바다는 묘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건물 속 강당과 산에는 없는 거대하고 넓은 기운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광안리 특설무대에서 공연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전의 공연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넓은 무대, 넓은 관객, 넓은 세상에서 모두가 음악 아래 하나 되었던 그 놀라운 기분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다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다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어쩌면 바다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럴지도?) 물에 들어가는 건 더더욱 싫고, 묻은 모래를 씻는 것도 싫어한다. 그래서 극히 어릴 때를 제외하고는 바다에 누워본 적이 없다. 그래서 백사장보다는 외곽의 보행로를 걸으며 바다를 바라보는 것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바다에 눕기에는 아직도 용기와 자신감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기만 하면 다대포 해수욕장이 보인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았고, 지리적 거리도 굉장히 가깝지만, 아직도 심리적 거리는 그렇지를 못 한 것 같다. 저 바다에 내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때가 온다면, 그때는 어느 정도 머리가 더 커지고 성숙의 여유가 생길 때가 아닐까. 그때가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

14. 7 해운대 모래축제. '바다를 지배하는 자' 컨셉이지만 아직도 바다에 지배당하고 있다.

나 하나의 모습으로 태어나 바다에 누워 해 저문 노을을 바라다 본다 
설익은 햇살에 젖은 파도는 눈물인듯 찢기워 간다 
일만의 눈부심이 가라앉고 밀물의 움직임 속에 
물결도 제각기 누워 잠잔다 마음은 물결처럼 흘러만 간다 
저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될까 물살의 깊은 속을 항구는 알까
저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될까 띱 띠리딥 딥 디리리리리 

나 하나의 모습으로 태어나 바다에 누워 해 저문 노을을 바라다 본다 
설익은 햇살에 젖은 파도는 눈물인듯 찢기워 간다 
일만의 눈부심이 가라앉고 밀물의 움직임 속에 
물결도 제각기 누워 잠잔다 마음은 물결처럼 흘러만 간다 
저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될까 물살의 깊은 속을 항구는 알까 
저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될까 띱 띠리딥 딥 디리리리리



어릇광대 (vjatls@naver.com)

Keep rockin, more over.


글을 쓰고, 다대포 해수욕장에 내려갔다 왔습니다.

비록 그날도 바다에 눕지는 못했지만, 한 걸음 더 가까이하고 왔어요.

언젠간 맘 편히 누워서 해 저문 노을을 바라다볼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