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 안녕하세요. 우선 이걸 보시는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떤 연유로 이곳까지 흘러 들어오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앞으로 이곳에는 제 페이스북에 음악과 함께 올려오던 잡설들과 비슷한 것들이 올라올 겁니다.
페이스북에 올리면서도 대체 이런 글과 음악을 누가 읽고 들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심지어는 듣기까지 하는 것 같더군요. 그러나 페이스북 친구들은 대부분 저와 오프라인에서 친분이 있는 분들이고 이곳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래도 읽어주시는 분이 한 분은 계실 테니 그 분을 위해서 열심히 쓸 참입니다.
첫 번째 글이라고 주제가 ‘첫’이네요.
첫, 항상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또한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안겨주고.. 이런 이야기는 팀원 중에 누군가가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얘기니 굳이 첨언할 필요는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주로 트리비아가 덕지덕지 붙은 정보 전달 글을 올리는 편인데 오늘은 처음이니 가볍게 제 첫사랑 얘기로 시작하겠습니다.
5살 때 꼭 붙어 다닌 곱슬머리 A양, 어머니끼리 친했고 나름 좋아해서 발렌타인데이랑 화이트데이 선물도 주고받았던 초딩 시절 B양, 말도 한 번 못 걸어보고 몇 달 동안 쳐다보기만 했던 중학교 1년 후배 C양 등을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참 애매합니다. 그리고 금사빠인지라 누군가를 좋아했다가 그만두는 일이 잦았습니다. 성사된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요.
이제 그 성사되지 못한 수많은 사랑 중 그나마 첫사랑이라고 꼽기에 가장 덜 어색한 얘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이야기는 스무 살 대학 새내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암울하다면 암울했고 즐거웠다면 즐거웠던 한 해였지요.
야심차게 입학했지만 전공은 영 안 맞았고 마음에 들었던 예쁜 동기는 예비역 선배에게 가버렸죠. 전공이 안 맞으니 학점 농사도 망쳤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말 좋았기에 1년 동안 열심히 술 마시며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성사되지 못한 사랑이랬으니 예쁜 동기 이야기냐고요?
아닙니다, 주인공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스무 살에서 스물한 살로 넘어가는 겨울방학에는 개강 직후 공연할 과내 연극 동아리 연습에 매진했고 그렇게 2학년을 맞았습니다. 군대 가기 전에 전공에 정을 붙여보기로 마음먹고 열심히 공부하리라고 각오를 새롭게 했지요.
개강 첫 날 별 생각 없이 신청한 철학과 수업을 듣기 위해 인문대 강의실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독강이라 혼자서 멍하니 있었는데 한 여자 분(이하 그 분이라고 지칭하겠습니다)이 강의실에 들어왔습니다.
하얀 피부에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를 휘날리시며 양손에 책을 한 아름 들고 들어오시는 모습에서는 후광이 비쳤습니다. 좀 지난 표현이지만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가 느껴졌습니다.
제가 금사빠기는 해도 첫눈에 반한 적은 없었는데 단숨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샘솟았기에 출석부를 때 이름을 유심히 들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첫 시간에 교수님이 던진 질문에 창의적(?)으로 답해서 나름 인상을 남겼다고 (제 스스로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집에 가서 교수님이 개설한 수업 카페에 가입하니 그 분이 쓰신 인사글이 보였습니다. 카페 닉네임 양식은 학과와 이름이어서 그 분이 저랑 같은 단과대에 같은 건물을 쓰는 학과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행여나 마주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그러고는 싸이월드를 켜서 사람찾기를 했습니다. 이름을 넣고 연도를 넣었습니다. 누나로 보였기에 한 살 위부터 차례차례 검색했는데 한참을 뒤져도 안 나오는 겁니다. 겨우 찾았는데 저보다 6살 연상이더군요. 그런 나이의 여자 분이 학부에 계신다는 것이 신기했지만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지요. 이제는 들이댈(?) 방법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제가 준비 중이던 연극 티켓을 건네면서 말을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공연 전에 있는 마지막 수업 시간에 표를 가지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강의실로 갔는데...
강의실 문에 휴강 공지가 떡하니 붙어 있더군요.
휴강을 원망할 일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내려갈 팀은 내려가고 안 될 놈은 뭘 해도 안 되나 봅니다.
그렇게 그 분이 볼 수도 있었을 공연을 마치고 다시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수업을 마치고 짐을 정리하는 그 분에게 다가갔습니다. 덜덜덜 떨면서 연극 공연 때문에 수업에 못 들어간 날의 수업 내용을 물어봤습니다.
다행히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귀에 쏙쏙 들어오더라고요. 그리고 제 폰에 달려 있던 단과대에서 나눠준 교통카드에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우리 단과대 사람들 철학 같은 쪽에 관심 없는데 하시면서 신기해하셨습니다. 그 수업은 마지막 교시에 있었기에 저와 그 분은 교문까지 같이 내려가면서 잠깐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와 그 분은 같이 앉아서 수업을 듣고 같이 정문까지 하교했습니다. 강의실에서 정문까지는 10분도 채 안 걸렸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그 분은 마치 여신과도 같았습니다. 키가 커서 눈에 확 띄었고 철학, 문학, 영화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전공에 대한 회의를 떨칠 수 없었고 결국 수능시험을 다시 보고자 휴학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휴학 전 마지막으로 철학 수업을 들어갔습니다. 그때까지 용기가 없어서 번호 달라는 말을 못한 상황이었기에 이참에 휴학한다고 이야기하면서 번호를 달라고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심정이었을까요? 인연이면 다시 보겠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무 말도 없이 덜컥 휴학하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얘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이런 건 원래 술 마시면서 풀어야하는데...
뒷얘기는 다음 기회에 해야겠습니다.
아참, 명색이 음악 블로그인데 음악을 빼먹을 뻔했어요. 무슨 곡을 걸까 한참 고민했는데 천사를 만난 얘기니 이 곡이 떠올랐습니다.
시작하자마자 뚜라루라루라루라~ 해서 놀라셨죠?
Eurythmics는 80년대를 풍미했던 뉴웨이브 혼성 듀오입니다.
여성 보컬인 Annie Lennox는 중성적인 이미지로 유명했는데요. 그들의 이전 히트작인 Sweet Dreams(Marilyn Manson이 커버하기도 했습니다) 뮤직비디오에서는 정장차림에 반삭을 하고 나오기도 했죠. 당장 이 곡이 수록된 앨범의 커버만 해도 그녀는 반삭입니다만 뮤비에서는 보기 드물게 그녀의 여성스러운 모습이 나옵니다.
루이 14세 시기를 배경으로 했다던데 세트랑 복장에 돈 깨나 들었을 것 같습니다. 지인 중 한 분은 80년대를 스케일의 시대라고 하더군요. 어깨뽕과 잔뜩 부풀린 파마머리는 80년대를 상징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중간의 하모니카 솔로는 무려 Stevie Wonder 선생님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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