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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음감대♬/유지의 오독의 나라

이미지와 한국적 록을 탐하는 욕망의 사이키델릭, 국카스텐 (2)

[오독의 나라]

 

이미지와 한국적 록을 탐하는 욕망의 사이키델릭, 국카스텐 (2)
    부제 : <Frame> 리뷰를 가장한 하현우 찬가

 

 

 

 

 

 

 

각설하고, 이제 2집 <Frame>이야기를 해보자.

 

여러 분야에서 폭넓게 쓰이는 용어 'Frame'은 기본적으로 '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국카스텐은 잉여싸롱과의 대담에서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네모난 틀을 보면 집중하게 되어있다.
액자 안의 스토리와 같이 하나의 시점을 갖고 보게 되는 것이다.
프레임의 이동을 통해 그 안에 들어온 죽어있는 어떤 사물이나 이념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넣어주고 싶었다.
 

 

라고 했다. 국카스텐의 음악들은 대체로 한 단어, 특히 명사로 되어있다. 그 사물 혹은 이념을 가만히 응시하고 관찰 혹은 관음하여 추출해낸 특성과 그에 파생되는 감정들을 호소하고 설명하는 것이 주된 가사의 흐름. 그런 의미에서 국카스텐은 일상적인 것을 전혀 다른 대상으로 바라보는 ‘낯설게 하기’를 일상화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표현의 시도 또한 같은 맥락이라 생각된다. 큐비즘, 질서등의 이야기는 이미지를 사운드로, 혹은 사운드를 이미지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생성·변형된 영감의 덩어리를 묘사한 것이 아닐까?

 

 

2집은 1집에서 보여줬던 폭발하는 야성에 정교한 세공이 더해져 보다 절제된 듯 하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한껏 무르익은 노련한 내공을 드러내는 역설을 보여준다. 2집에 수록된 네 곡을 만나보자. 말이 2집이지 사실 새롭게 2집에서 수록된 곡은 두 곡뿐이다. 곡 선정의 기준은, 순전히 필자의 취향이다.

 

 

 

 

[ '깃털' 아트워크 by 서고운 ]

 

 

1. 몰락의 미학 ‘깃털’

 

"기나긴 어제와, 기나긴 소음과
 더 기나긴 바람의 흔적과,
 더 기나긴 날개의 노래는"


 

 

 

신형철의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중에서 ‘나는 늘 몰락한 자들에게 매료되곤 했다.’,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몰락하는 자’에 대한 글을 읽고 만들었습니다. ‘이 노래에서 깃털은 상처와 비상의 흔적, 몰락, 과거 그리고 전부였던 하나를 말합니다. 혼란스러웠던 과거의 상처를 안고 저 멀리 가볍게 낙하하는 깃털의 형상을 표현했습니다.

 

 

끊임없이 빠져들어서 봤던 영상. 저 표현력을 어찌해야 좋을까. 곡 설명도 어찌 저리 잘하는지. 저 글을 읽고 반했다. ‘거울’을 듣고 당황스러웠던 마음이 ‘깃털’을 듣고는 빠져나갈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깃털’은 2012년에 이미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연주한 적이 있는 곡인데 음원으로는 늦게 나온 편이다. 그동안 영상 무한 재생은 물론이고 콘서트를 가도 ‘기...깃털...깃털을 다오...!’ 애걸복걸하고, 싱글로라도 내줬으면 하며 비나이다 비나이다 깃털 앓이를 하던 치성이 이제야 들어갔는지 2집에 당당히 수록됐다.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모두를 포기한 몰락하는 자의 패배감과 함께 느껴지는 숭고함, 초월의 아름다움이 소리를 통해 구현된다. 사운드의 공간감이 참 낙하하는 듯한 쓸쓸한 분위기를 잘 드러내는데, 얼핏 신디사이저같은 이 소리가 전부 기타로 낸 것이라는 게 놀라운 점. 말도 안되게 좋다. 그들이 말하는 자기연민과 공허는, 설령 지금의 내가 아닐지라도 어떤 지점의 나를 불러다 세워놓는다. 그리곤 그 때의 나를 깨워 뜨끔하게 하는 것이다. 괴로운데, 또 그렇기에 몰입하게 된다. 어휴, 이런 천재들 같으니.

 

 

 

 

 

 

 

[ '몽타주' 아트워크 by 서고운 ]

 

 

2. 충돌에 의한 변화 '몽타주'

 

"가득 채워지는 잦고 또 바쁜
 앵글 속의 피사체는
 그저 숨이 붙어 있는 그대로
 편집이 되어 버렸지"

 

 

 

몽타주라는 곡은 러시아의 명감독 세르게이 아이젠슈타인의 영화 편집 기법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A+B=C 라는 서로 다른 두 가지가 부딪혀 또 다른 하나를 만들어 낸다는 이론으로 ‘충돌에 의한 변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몽타주는 2012년에 싱글 앨범으로 이미 발표됐던 곡이다. 역시 이미지의 예술인 영화의 편집 기법을 가져와 접목시켰다. 사실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땐 의아했다. 그동안 국카스텐의 음악에서 많이 들었던 리프와 멜로디가 교묘하게 짜깁기되어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하나하나 어디가 비슷한지 대조해보며 그 소스들이 그대로 쓰였다는 사실에 혹시 벌써 ‘자가 복제’가 시작된 게 아닌가하는 생각에 불안해했는데 곧 본인의 멍청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선 익숙한 부분들이 충돌하여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찾으며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제목의 뜻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길. 이 곡의 형식 자체가 곡의 본질이었다. 정말이지, 안좋아할 수가 없다.  

 

 

 

[ '작은 인질' 아트워크 by 서고운 ]

 

3. 존재의 슬픔과 한 '작은 인질'

 

"누가, 대신 내 노를 저어주려나
 누가, 고단한 고요함을 덜어 주려나

 강물이 시들어서
 고향도 못 가는 작은
 배야 울자, 마른 강이 차도록 울자"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화가 장 포트리에의 ‘어린 인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프랑스 화가에게서 영향을 받았음에도 이 곡은 앞서 언급한 국카스텐의 한국적 록의 경향을 제대로 보여준다. 특별히 한국적 정서 중에서도 ‘한(恨)’이 두드러지는데, 음산한 뱃노래를 연상시키는 것이다. 아리고 먹먹한. 세상의 시련에 떠밀려 깊은 바다에 제물로 바쳐지는 어떤 이의 마지막 노래같기도 하고 이승에 둘 곳 없는 영혼이 존재의 슬픔을 토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잔잔한 밤바다를 노저어가는 듯 물결치는 성긴 연주 사이를 헤쳐가는 보컬의 목소리는 창에 가깝다. 담담하기에 더욱 구슬픈 울음. 무엇이 그렇게 야속한 것일까.

 

 

 

[ 장 포트리에, <어린 인질>, 1945 / 캔버스 위에 풀로 붙인 종이에 유채 / 27 x 23cm / 개인 소장 ]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세계 2차 대전을 겪으며 <인질들> 연작을 그려낸 장 포트리에는 파리 근교에서 레지스탕스의 비밀문서를 전달하는 일을 했다. 게슈타포의 추적을 피해서 정신병원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그는 당시 주변의 숲 속에서 계속되는 이상한 비명소리를 듣게 된다. 그 비명소리는 나치가 무작위로 민간인을 선별해 고문하고 처형하는 과정에서 들리는 것이었고, 그는 그들의 고통과 두려움을 함께 느끼며 <인질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뭉개진 듯 석고 반죽을 우겨 바르고 파스텔 가루를 뿌리거나 붓으로 윤곽을 그리는 ‘임파스토(Impasto)’기법으로 작업한 이 작품들은 특정한 개인의 초상을 자세히 묘사하기보다는 동시대의 전쟁의 참혹한 아픔을 보다 보편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추상화했다. 울퉁불퉁한 형상은 깊게 패인 상흔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런 모티브에 국카스텐만의 색을 입혀 재해석한 곡이 ‘작은 인질’인 것인데. 이렇게만 해석한다면 곡에 깃든 한을 설명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2015년 1월 10일 시사IN 인터뷰 일부를 들여다보면 그 이유가 보인다.

 

 

그들은 홍대 밴드가 아니다. 안산 밴드다. 기혼인 전규호를 제외한 모두가 안산에 산다. 매니저까지. 그러니 세월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희생자 중 한 명인 단원고 박수현군은 생전에 국카스텐의 열렬한 팬이었다. 빈소와 분향소를 찾아간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경험은 음악에도 영향을 미쳤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화가 장 포트리에의 ‘어린 인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은 인질’이 그것이다. “곡을 다 만들어놓고 세월호를 겪었어요. 그런 후 노래를 다듬고 부르는데 그때의 감정이 스며들더라고요.” 지난해 8월에 열린 ‘사운드베리 페스타’에 선 국카스텐은 박수현군의 가족을 초대했다. “안산은 지금도 암울해요.”

 


아마 지금 이 곡을 처음 듣는 한국인이라면 대체로 비슷한 감정이 들지 않을까? 이 노래가 우리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이유는 우리가 같은 정서와 경험을 공유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전쟁도, 세월호도 사회의 한 시절을 송두리째 끊어낼 만큼 큰 충격을 줬다. 참 아팠고, 역사의 거대한 폭력 앞에서 존재는 무력했다.

 

 

 

[ 'Lost' 아트워크 by 서고운 ]

 

 

4. 젊음이 잃어가는 것들, Lost

 

"우린 어제, 서툰 밤에, 달에 취해
 삯을 잃었네. 삯을 잃었네.

 어디 있냐고 찾아봐도 이미 바보같이
 모두 떨어뜨렸네, 남김없이 버렸네"

 

 

 

이 노래는 24살인가 25살 때 친구에게 쓴 시를 토대로 만든 노래이다. 2집에서 변신이 가장 멋지고 힘있는 노래라면, 이 노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노래이자 가장 사랑스러운 노래이다. 20대를 상징할 수 있는 의미있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20대에는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비현실적인 자기 모습을 꿈꾸곤 하는데, 항상 현실이라는 것은 꿈꾼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예상치 못하게 부딪히는 벽들도 있고, 그 나이 또래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실수와 상처 같은 것들로 계속 상실되어가는, 온전하게 갖출 수 없어 보내야만 하는 모습을 그린 노래다.

 

 

달이 뜬 밤바다. 물방울처럼 똑똑 떨어지는 기타소리는 가야금에 가깝다. ‘작은 인질’보다는 밝은 듯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조금 스산한 느낌. 울며 뱉은 입김처럼 파동은 퍼져나가며 파편들을 실어나른다. 바다 위 두 청춘은 자신들이 흩어져가는 것도 모른 채 식은 다짐들만 마셔댄다.

 

 

이 노래는 상실을 다룬다는 데에서 ‘깃털’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깃털’은 모든 것이 조각나고 아무것도 걸치지 못한 채 낙하하는 존재의 허무가 이카루스를 보는 듯 안타깝고 비극적인 마음이 든다. 반면 ‘Lost’는 상실의 과정 안에서 잃어가는 것의 정체를 인식하지도 못한 채 마음껏 젊음을 퍼올려 소모하는 청춘의 모습을 그린다는 점에서, 안타까움 또한 물론 존재하지만 그 이전에 아직 꿈을 품고 달려나가는 미완의 존재가 주는 희망적인 느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점이 예쁘다. 하현우의 표현대로, 사랑스럽다.

 

 

 

 

에필로그

 
일기인지 리뷰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글은 대체 뭔가 싶겠다. 국카스텐은 내 20대 초반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존재다. 우상이자 선생님이었고, 인생 선배이자 친구였다. 한번쯤은 정리하고 싶었는데 턱없이 부족하고 아직도 할말이 많지만, 게으른 내가 이렇게라도 돌아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하현우. 늘 폐인처럼 깎다만 수염을 달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디다스 추리닝을 입은 채, ‘죽고싶다’는 말을 숨쉬듯 뱉으면서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던 이상한 사람. 기타를 잡으면 눈빛이 달라지고 노래를 하는 순간 주변의 공기를 바꾸는 정말 이상한 남자. 그는 우리에게 또 다른 언어를 가르쳤다. 그 곳에서 그를 포함해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음악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생각까지 하게됐고. 그즈음은 일주일 내내 수업이 있는 날을 기다렸던 것 같다.

 

너무 잘나가는 바람에 마지막 인사 뒤로 회식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못하고 있지만, 지켜지지 않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계속해서 이렇게 음악으로 만날 수 있다면.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