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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음감대♬/들림의 힙문학 산책

[에세이]아직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누군지 / 다이나믹 듀오 - 파도

 나름대로 하고 싶은 것들은 하면서 사는 편이라 생각했다. 세상이라는 바다 위에서 인생이라는 배의 선장은 나라고. 가끔은 악천후와 배멀미로 고생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가는 길이니 기분 좋게 항해를 즐기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내 인생이란 멋진 크루즈가 아닌 구명튜브란 걸 깨달은 이후 두려움이 시작됐다. 현실에 발 딛고 있지 않은 삶. 나는 튜브에 의지해 심해에서 발버둥치는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인생이란 예측할 수 없기에 불안하다. 더욱이 '고용불안'과 '청년실업'이 화두인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불안'을 떨치기 위해 취업에 몰두하는 것은 지극히 본능적인 일이다. 어쩌면 나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되는 게 두렵기도 했다. 사실 애써 현실이란 것을 부정하면서 소년의 모험을 즐기고 있었는지 모른다. 저 아래 현실이 있다는 걸 안 순간부터, 나는 끝없이 아래로 빨려들어갈 인간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5년. ‘군대갔다오면 곧 서른’이라던 26살 청년 다이나믹 듀오도 같은 고민을 토로한다. 이적의 노래 ‘지구 위에서’의 전주에 나오는 기타 리프를 샘플링한 다이나믹 듀오의 ‘파도’는 청년의 삶을 얘기한다. 이때 최자와 개코의 발성은 단단해진 지금과는 사뭇 다르게 옅고 붕 떠있다. 피쳐링으로 참여한 팔로알토 역시 지금과는 톤이 많이 다르다. 앳된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이렇게 시작한다. 


아직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누군지. 도대체 뭘 하고 있고 또 뭘 하고 싶은지.

내 지루한 하루는 왜 매일 똑같은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난 왜 노래하는지.


 그들의 벌스는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환상의 종말과 다시 찾을 수 없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외로움과 슬픔의 정서들을 다루고 있다. ‘어른이 되면 영웅이’ 될 줄 알았건만, 어른이 되니 ‘온종일 오직 내일에 대한 고민만’하고 ‘가버린 어제를 탓하며 맘을 졸’일 뿐이다. 하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술을 쭉 들이’키면서 ‘오래 전 내 곁을 떠나간 나고 싶’다며 ‘답 없는 넋두리나 늘어놓는 게’ 전부다.


 하지만 환상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모험은 시작된다. 현실에 굴복하지 않은 채 항해를 계속하는 것. ‘어차피 헤엄쳐 봐도 바람에 쓸려와 부서질 걸 알면서도 끝없이 헤엄쳐 가’는 것. 그것은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아닌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천재가 아닌 걸’ 인정하면서, 열등감을 동력으로 삼아 끝없이 움직이는 것. 다이나믹 듀오가 심해의 구명튜브 위에서 결심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어디로 갈지 몰랐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다이나믹 듀오는 스스로 힙합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듀오가 됨가 동시에, 크러쉬, 자이언티 등을 이끄는 아메바컬쳐의 수장이 됐다. 피쳐링으로 참여한 팔로알토 역시 비프리, 오케이션, 키스 에이프 허클베리 피 등 지금 한국 힙합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는 뮤지션들이 소속된 하이라이트레코즈의 치프Cheef가 됐다. 물론 그들의 항해는 끝나지 않았다. 저 바다의 끝이 어딘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현실에 발을 붙이지 않은 채 항해를 계속해왔던 사람들. 그들의 항로는 나에게 희망을 준다. 물론 한없이 부서질 걸 알지만 아직까지는 바닷물을 더 먹고 싶다.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끝없는 의문과 두려움, 외로움을 길동무로 삼는 것이다. 환상의 시대는 끝이 났다. 하지만 리얼리스트로서 여전히 불가능한 꿈을 바라보고 싶다. 나는 북극성에 닿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아무리 헤엄쳐 봐도 

제자리라는 걸 I know

난 부서지는 파도 


[verse 1]

Choiza) 아직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누군지

도대체 뭘 하고 있고. 또 뭘 하고 싶은지 

내 지루한 하루는 왜 매일 똑같은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난 왜 노래하는 지

책임은 내 두 팔에 수갑 날 세상 안에 수감

난 지겨워 눈 뜨고부터 계속 되는 수난

이곳은 나와 다른 칼라 오~ 내게는 안 맞아

조금 빨라 너무 달라 난 내 맘의 문을 닫아.

이제 풀 없이 꺾이는 내 굳었던 최씨 고집

못 뿌리쳐 나태의 교태 나를 유혹하는 손짓

온종일 오직 내일에 대한 고민 만

가버린 어제를 탓하며 맘을 졸인다. 

어제의 날 이끌던 건 내 의지와 흥미

오늘의 날 채찍질하는 건 임박한 앨범 발매일

신께 감사해 내가 천재가 아닌걸 

난 알아 열등감만이 날 움직이는 걸


[Chorus]

난 알아 어차피 나 헤엄쳐 봐도 I know you know

바람에 쓸려와. 난 부서지는 파도 I know you know


[verse 2]

Gaeko)아직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누군지 

도대체 뭘 하고 있고 또 뭘 하고 싶은지

내 지루한 하루는 왜 매일 똑같은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난 왜 노래하는지 

나 홀로 걸어가는 집 앞 가로수길 

태연히 걸어 마치 내 삶이 자유로운 듯이 

속으론 몰래 바래 누가 나를 알아보길 

하루 종일 전화기를 만져 누가 날 찾아주길 

난 지금 갇혀있어 내가 만든 청춘의 덫에 

바닥난 레퍼토리 난 져가는 sunset

때론 눈물로 그리워해 눈물로 불을 끄네 어린 시절 

내 눈가에 타던 적색의 불을

난 적색의 술을 쭉 들이켜 

지금 난 시계추를 내 손에 잡고 있어 

이제 난 나사가 풀린 듯 살고 싶어 

오래 전 내 곁을 떠나간 나고 싶어


[Chorus]


[bridge] x2

한없이 움츠린 

말없이 웅크린

아직도 못 추스린 

내 고단한 몸부림 


[verse 3]

Paloalto) 아직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누군지

도대체 뭘 하고 있고. 또 뭘 하고 싶은지 

내 지루한 하루는 왜 매일 똑같은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난 왜 노래하는 지

바람이 살살 부는 밤하늘은 보라 빛

가만히 창밖에 풍경을 바라 보았지

나란히 갈라진 가로등 아래 쏟아지는 삶들을 

도화지에 하나씩 그려 놓았지

어른이 되면 내가 영웅이 되어

하늘을 날게 될 줄 알았어 허나 되려

누군가에게 나약한 모습으로 기대며

답 없는 넋두리나 늘어 놓는 게 버릇이 됐어

바깥은 끊임 없이 움직여 더 빠르게

이상하게 난 점점 더 느려져 가는데 

외롭고 슬퍼서 계속 노래를 불렀어

한 발짝 더 물러서서 내 얘기를 들어줘 


[chorus] 


저 바다 끝은 어디길래 

가도 가도 난 멀기만 해

부서지는 걸 알아도 난 끝없이 헤엄쳐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