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15년이 된지 6일이 지났다. 창세기대로라면 세상이 창조될 시간인데, 아직까지 작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작년을 되돌아봤다. 그러다 문득 음악 블로그에서 힙합을 다루는데, 나름의 방식으로 2014년을 추억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14년 한국 힙합 앨범 베스트라기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들은 앨범 10개를 추려서 간단히 정리해보았다.
1. 화지 - EAT(발매 : 2014.01.24)
(다운로드 링크 : http://www.mediafire.com/download/011hjos0ugqboac/hwaji_eat_2014.zip )
한국 힙합신의 기대주 중 한 명이었던 화지의 첫 정규앨범. 더군다나 무료로 공개되었다. 무료 공개임에도 수록곡 뿐 아니라 디지털 부클릿의 완성도까지 높은 웰메이드 앨범이다. 어둡고 음울한 정서가 앨범 전체를 지배하다, 후반부에 이르러 상승하는 구조를 띄고 있다. 이때문인지 호불호가 갈리는 앨범이다. 비교적 무난한 랩 퍼포먼스에 대한 아쉬움을 상쇄하듯, 마지막 트랙인 'Bobby James Bombs'에서 보여준 폭발력은 화지의 다음 앨범을 기대하게 한다. 2014년 초반에 발매되었지만, 2014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앨범 중 하나였다.
※ 추천트랙 : 03.말어(with Okasian), 13.Bobby James Bombs
2. 허클베리 피 - gOld(2014.03.28)
프리스타일 MC의 곡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편견을 깨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 허클베리 피의 첫 정규앨범. 이미 피노다인, 겟벡커스 등 프로젝트 그룹 활동과 [Man In Black(EP)] 앨범 등으로 많은 작업물을 선보였음에도 전혀 다른 작법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전까지 스스로 힙합이 아니라고 표현한 피노다인 앨범에서 보여주던 다양한 시선이 첫 솔로 정규작에서는 철저히 허클베리 피 자신을 향하고 있다. 이처럼 개인의 서사와 태도를 드러내는데 주목하므로써 솔로 힙합 뮤지션으로 무난히 첫 시작을 알린 수작이다.
※ 추천트랙 : 05.분신, 08.무언가無言歌(feat. MC META, IGNITO)
3. Crush - Chrush On You(2014.06.05)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프로듀싱을 하는 진짜 R&B 싱어는 무척이나 귀하다. 때문인지 Crush는 2013년, 2014년 다양한 힙합 뮤지션의 곡들에 피쳐링으로 참여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Crush는 자신의 데뷔앨범에서 자신의 다양한 음악적 소화력을 보여주는데 주목한 듯 하다. 트렌드인 PBR&B부터 뉴잭스윙, 슬로우 잼에 이르기까지 R&B라는 범주 내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앨범에서 다루었다. 물론 주제적인 측면에서 한정적이거나 과감하지 못한 단점이 있었지만, 프로듀싱에서 더 나아가 퍼포먼스까지 가능한 R&B 싱어의 등장과 성장을 볼 수 있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 추천트랙 : 01.눈이 마주친 순간(I Fancy You), 08.Hug Me(feat. 개코)
4. Just Music - 파급효과(2014.06.13)
쇼미더머니2와 컨트롤 대란으로 대중들에게까지 영향력을 넓힌 스윙스가 이끄는 레이블 Just Music은 2014년 쇼미더머니3에 레이블 멤버 거의 전원을 참여시키며 다시 한 번 세력을 넓혔다. Just Music의 첫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인 [파급효과]는 천재노창의 지휘 아래 완성되었다. 천재노창의 곡들은 이번 앨범 역시 파편화된 샘플링 운용, 기승전결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전개 등 Kanye West의 흔적(스스로 빠돌이를 자처할 정도)이 녹아있다. 하지만 천재노창은 [파급효과]를 통해서 단순한 워너비를 넘어 자신만의 사운드를 구현하고, 개성강한 래퍼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2014년 가장 인상적인 컴필레이션 앨범을 완성시켰다.
※ 추천트랙 : 03.더, 10.Rain Showers Remix
5. B-Free - Korean Dream(2014.06.25)
직설적인 가사와 어눌한 발음이 매력적인 비프리의 3집 앨범인 [Korean Dream]은 여러 리스너에게 2014년 올해의 앨범으로 꼽힐 정도로 각광받았던 앨범이다. 비프리는 [Korean Dream]에서 하와이에서 온 청년이 한국에서 이뤄내고 꿈꾸고, 느끼는 것들을 힙합적으로 풀어놓았다. 이번 앨범에선 특히 신인 프로듀서 콕재즈와의 호흡이 눈에 띈다. 콕재즈는 직접 세션 녹음을 할 정도로 여러 악기를 실제로 잘다루며,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프로듀서이다. 특히 '불타'는 사운드의 장르적 결합과 힙합의 철학이 조화를 이룬 인상적인 곡이다. 여러 호평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앨범을 후반까지 끌고가는 뒷심이 아쉽게 느껴진 앨범이다.
※ 추천트랙 : 04.Hot Summer, 05.불타(feat. Cokejazz)
6. 박재범 - Evolution(2014.09.01)
소녀들의 우상인 아이돌에서 시작해서 떠오르는 힙합 레이블 AOMG의 수장이 되기까지 박재범이 보여준 행보는 단연 독보적이다. 이는 단순히 드라마틱한 그의 배경 뿐 아니라, 뮤지션으로서 가진 그의 재능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앨범의 전반부는 그의 전매 특허인 R&B 트랙들로, 후반부는 랩 위주로 이루어져있다. 독특한 음색으로 노래하는 그의 보컬은 PBR&B와 슬로우 잼, 댄스 등을 넘나들며 더욱 단련된 면을 보여준다. 랩의 경우 아직까지 랩 벌스로 곡을 채우기엔 서툰 한국말 표현 때문인지, 유치한 표현을 좋아하는 그의 취향 때문인지 조금 아쉬운 면이 있지만, 예전과 비교해서 충분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 추천트랙 : 02.JOAH, 13.미친놈(SUCCESS CRAZED)(feat. Gray, Loco, Simon Dominic & Trinidad James)
7. 제리케이 - 현실, 적(2014.09.23)
미국의 루페 피아스코나 커먼 같은 컨셔스 랩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렇기에 사회에 대한 분명한 시선과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제리케이란 뮤지션은 한국 힙합신 뿐만 아니라, 대중음악에 있어서도 무척 소중한 존재다. 뮤지션으로 제리케이에게 있어서 특히 주목할만한 점은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랩 퍼포먼스에 대한 성취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앨범인 [현실, 적]은 그의 커리어나 작년 발매된 힙합 앨범 중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훌륭한 싱글 트랙임과 별개로 앨범 후반부의 트랙들이 전체적인 앨범 컨셉과 다소 유기성이 떨어지는 것은 다소 아쉬운 점이다.
※ 추천트랙 : 08.묵념(feat. Sleeq), 13.먼지 쌓인 기타(feat.정차식)
8. 차붐 - ORIGINAL(2014.10.07)
차붐의 첫 정규 1집은 한국 힙합이라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개념을 정립하는데 가능성을 제시한 명반이다. 본토 힙합이 중요하게 다루는 거리의 삶을 한국, 더 좁게 좁히면 안산이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이는 단순히 본토의 사운드와 기존의 테마를 수입하고 번역하는데 그쳤던 최근의 트렌드와는 확연히 다른 지점이다. 차붐은 자신의 삶을 힙합적이면서, 한국적으로 녹여냈다. 더군다나 각 트랙들이 유기성을 갖추고, 서사구조를 이루는 앨범은 찾아보기 힘들다. 컨셉 앨범임에도 여러 주제와 보컬 트랙까지 소화하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첫 정규작으로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성과인 것 같다.
※ 추천트랙 : 04.침대는 과학이다, 07.쌈마이
9. 개코 - Redingray(2014.10.16)
한국 힙합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가장 기대했던 개코의 솔로 앨범. 2CD의 꽉 채운 트랙 수에도 불구하고, 이번 앨범은 무난하단 평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랩 퍼포먼스에 대한 기대치는 이미 높아질 때로 높아졌으며, 다이나믹 듀오 음악에서 보여준 주제를 다루는 표현의 능수능란함 역시 익숙해진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코는 이번 앨범을 통해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었으며, '은색 소나타', '세상에'와 같은 트랙을 통해 대중과 장르팬의 경계에서 가장 잘 놀 수 있는 뮤지션이란 사실 역시 증명했다. 개인적으로는 'Chase the rapper'와 같이 랩으로 조지는 트랙이 좀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추천트랙 : 1-09.은색 소나타(feat. Crush), 2-09.치명적인 비음 Remix(feat. Dok2)
10. 에픽하이 - 신발장(2014.10.21)
에픽하이 7집 [99]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던 앨범이다. 기존의 에픽하이 음악에서 보여주던 서정적이고 우울한 색채, 때론 냉소적이고 비평적인 시선이 배제된 채, 거의 댄스에 가까운 밝은 무드의 곡들로 앨범을 채운 까닭이다. 그러한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에픽하이는 다시 '에픽하이 음악'으로 돌아왔다. 앨범은 서정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스포일러', '또 싸워' 등과 같은 트랙들과 사회에 대한 시선을 견지한 'Rich', Lesson 시리즈 'LESSON5(타임라인)', 그리고 장르 팬들을 만족시켜줄 'Born Hater'와 '부르즈 할리파'까지 우리가 에픽하이에 대해 기대하는 것들을 그대로 구현했다. 비록 타블로의 말처럼 이번 앨범이 에픽하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악을 했지만, 매번 '그 이상을 보여주던 에픽하이'였기에 기대를 100% 충족시키지는 못한 앨범이다.
※ 추천트랙 : 04.스포일러, 05.부르즈 할리파(feat. 얀키, 개코)
※ 리스트에는 없지만 즐겨들었던 앨범 :
ㆍ 태양 - RISE(2014.06.03)
ㆍ 빈지노 - Up All Night(EP)(2014.07.16)
ㆍ 팔로알토 - Cheers(EP)(2014.09.23)
ㆍ 크루셜스타 - Midnight(2014.10.16)
'그들 각자의 음감대♬ > 들림의 힙문학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감으로써 기억하기 (0) | 2015.04.16 |
---|---|
[리뷰]토이 7집 「Da capo」, 돌아갈 수도 앞으로 갈 수도 없는... (0) | 2015.03.13 |
[에세이]아직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누군지 / 다이나믹 듀오 - 파도 (0) | 2015.02.15 |
[힙문학 산책]랩은 거리의 시예요 (0) | 2014.11.20 |
[리뷰]자이언티(Zion.T) - 양화대교,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0) | 2014.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