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림의 힙문학 산책"은 힙합 음악이 갖고 있는 문학적인 아름다움과 인문학적 가치에 집중하여, 인간과 사회를 살펴보고 이해할 수 있는 매체로서 여러 노래들을 재조명하려고 합니다.
얼마 전 영국의 왕따 소년이 전 세계를 열광시켰다. 그 주인공은 바스&멜로디(Bars&Melody)라는 팀으로 오디션에 참가한 15살인 찰리와 13살인 리안드레였다. 그들이 참가한 오디션은 세계적인 스타 폴 포츠를 배출했던 「브리티시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라는 영국의 인기 프로그램이다. 그들은 무대 위에서 Twista의 ‘Hope’ 반주에 가사를 쓴 ‘Hopeful’이란 곡을 불렀다. ‘Hopeful’은 리안드레가 직접 자신이 겪은 학교폭력 경험으로 쓴 가사의 곡이다. 어린 소년의 상처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상처를 극복하고 무대 위에서 멋지게 랩을 하는 모습은 그보다 큰 용기를 주었다. 그 가사는 전 세계에서 딱 한 명, 리안드레 밖에 쓸 수 없는 가사였다. 힙합이 주는 울림은 이처럼 삶을 가사로 녹여내는 데에서 시작한다.
힙합은 다른 음악들보다 가사에 대해서 엄격하다. MC라면 직접 가사를 써야한다는 것이 힙합 문화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이다. 그래서 어느 장르보다 대필 논란이 많이 일어나기도 한다. 직접 가사를 쓴다는 것은 곧 노래의 진정성 문제로 직결된다. 그래서 전설적인 마약 밀배범인 리키 로스의 이름을 딴 릭 로스(Rick Ross)가 과거의 교도관이었다는 과거가 밝혀졌을 때나, 가장 핫한 뮤지션 중 한 명인 드레이크(Drake)가 캐나다의 부유한 동네에서 자랐다는 사실은 지속적인 공격거리가 되었다. 교도관으로서 릭 로스의 삶과 마약상 보스를 기믹으로 하는 그의 음악은 괴리가 있었고, 자수성가했다며 ‘Started From The Bottom’을 외치던 드레이크와 그가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처럼 힙합은 다른 어떤 음악보다 인간 자체와 맞닿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60억의 인류가 저마다 다르듯, 힙합 음악이 다루는 주제 역시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요즘 주류 힙합음악의 주제들이 한정적이고 협소한 데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다. 이는 미국의 힙합신과 한국의 힙합신 모두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이다. 그들의 주장은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노래들이 ‘술’, ‘여자’, ‘돈’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의견이 일정 부분 틀린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대해서 비판할 이유는 없다. 앞서 밝혔듯이 힙합에서 음악은 뮤지션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성공한 뮤지션에게 계속해서 청춘의 어려움을 노래하길 바라는 것은 힙합이라는 음악의 특성과 그의 삶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현재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힙합 음악들을 외에 조금만 시야를 넓히면 힙합에서는 다른 음악에 비해 훨씬 다양한 주제들이 다뤄지고 있다. 물론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술’, ‘여자’, ‘돈’ 역시 뮤지션 각자 표현하는 방식들이 다르다. 여기에 주제를 넘어선 랩의 형식적인 부분인 라임과 플로우, 사운드적인 요소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세계에는 힙합 뮤지션만큼의 다양한 음악들이 존재한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음악. 삶을 음악적 언어로 뱉어내는 예술. 그만큼 밀접하기 때문에, 삶마저도 예술이 되어버리는 힙합이라는 장르의 특성은 인문적인 관점에서 더없이 매력적이다.
하지만 힙합이 있는 그대로 사실만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물론 문학적인 표현만 곁들여지는 에세이로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힙합은 자전적 소설에 훨씬 가깝다. 자전적 소설의 중요성은 사실이라기 보단 진실이다. 얼마나 정확하게 사실을 전달하느냐보다, 얼마나 진정성 있게 삶을 전달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힙합 뮤지션들은 진실의 바탕 위에 캐릭터와 스토리를 부여한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진실은 유지하면서(keep it real), 다양한 화자가 되기도 하고, 과장적인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는 힙합이 단순한 사운드적인 부분을 떠나서, 내용적으로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와 동시에 힙합이라는 뿌리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은 음악적 요소이다. 이 음악적 요소는 노래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시에서 출발한다. 지금은 거의 모두가 알고 있는 라임은 사실 힙합만의 것이 아니다. 시에서 리듬감을 형성하는 압운은 예전부터 정형시의 필수 요소 중 하나였다. 여기에 플로우로 설명할 수 있는 음의 강약, 고저, 음수, 음율 등이 합쳐진 것이 시에서 말하는 운율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어찌 보면 랩은 마디의 단위로 이루어지는 정형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라임이라는 개념을 무시한 UMC와 같은 시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라임을 필수적인 요소로 본다는 점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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