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무섭게 계절을 채근한다. 간절히 멈췄으면 하는 순간에도, 시간을 되돌려보려 있는 힘껏 그 물살에 온몸으로 부딪혀도. 봄은 겨울을 잔인하게 삼킨다. 다시 봄이다. 그렇게 삶은 계속되고, 그 삶 속에서 행복해지려고 발악하는 게 인간이다. 하지만 아픈 봄을 기억하는 한 사람으로서 지금의 행복이 역설적으로 죄스럽다.
작년 8월에 발표한 제리케이의 “Stay Strong”의 가사는 ‘결국엔 이겨낼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결국 진실은 거짓보다 강하다는 걸 믿고 싶다. 엄마와 아빠기에 포기할 수 없다는 그들은 슬프게 여전히 강할 수밖에 없다.
랩퍼인 아날로그소년은 세월호 희생자인 故 박수현 군의 아버지 박종대씨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가사를 썼다. 아웃트로의 가사가 아프게 다가온다. “이제는 우리의 지치고 쉰 목소리가 / 조금은 피곤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 서로의 팔짱을 껴 / 더 이상 침몰하지 않게 꽉 잡아줘”.
Verse 1
그 전날 아침 이별의 포옹과 그 흔한
인사가 허탈하게 마지막이 됐구나
이렇게 짧은 인생 일 줄 알았으면
그 좋아하던 음악하게 그냥 놔뒀을걸
2014년 4월 하고도 16일은
입에도 담기 싫어 닫아버린 침묵임을
모든 게 그날 안에서 다 멈춰버렸어
한꺼번에 모든 불빛이 다 꺼져버렸어
내 아이의 희생으로 사회가 변한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나 잔인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바뀔 수 있다면
덜 억울할 것 같아 숨 쉬고 살 것 같아
우린 아이들만 키웠고 보는 그대로를 믿었어
하지만 그날 이후 믿어왔던 것을 지웠어
이 나란 일 년 동안 배신감 만을 안겼어
아무리 피 토해도 메아리는 없어
Hook
여전히 수면 아래 잠겨있네
세월은 여전히 잠들어있네
모든 게 숨겨지고 가려진 채
일 년 전 그날에 다 갇혀있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남아있어 저 아래 깊숙이
차가운 거짓 안에 삼켜졌던 지난해
4월 16일에 잠이 든 세월을 인양해
Verse 2
큰 돈이었지 만져 본 적이 없지만
그건 아이들을 향해 던진 돌이었지
배,보상금을 가지고 시선을 돌린 거지
비참한 꼴이었지 우린 모욕적이었지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무슨 돈을 줘
어떻게 그런 소릴 쉽게 해? 미친 더러운 쇼
단지 원하는 건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그리고 돌아오지 못한 9명이 생각나지
정치권은 돈 문제를 갖다 붙이고
언론은 눈치 보면서 그대로 맞장구치고
본질을 흐리면서 입 막아버리고
사람들은 왜곡된 얘기를 받아들이고
함께 아파해줬던 일 년 전 마음은 사라져 간
대신 조롱으로 채워져 가
자식은 가슴에다 묻는 거라고?
모르면 닥치고 있어 헛소리하지 말고
Hook
여전히 수면 아래 잠겨있네
세월은 여전히 잠들어있네
모든 게 숨겨지고 가려진 채
일 년 전 그날에 다 갇혀있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남아있어 저 아래 깊숙이
차가운 거짓 안에 삼켜졌던 지난해
4월 16일에 잠이 든 세월을 인양해
Outro
이제는 우리의 지치고 쉰 목소리가
조금은 피곤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서로의 팔짱을 껴
더 이상 침몰하지 않게 꽉 잡아줘
이제는 우리의 지치고 쉰 목소리가
조금은 피곤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서로의 팔짱을 껴
더 이상 침몰하지 않게 꽉 잡아줘
삭발하는 유가족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의 잘려나간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고통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에겐 명백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할 것들이 분명히 있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도대체 국가는 왜 그들을 그렇게 내버려둬야 했는지. 풀려야할 문제들이 해초처럼 엮인 채로, 진실은 돌아오지 못한 9명과 함께 깜깜한 바다 속에 실종되어버렸다. 유가족들은 진실에 다가가고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차가운 세상 물속을 헤집으며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에겐 그 지옥과도 같았던 1년 동안, 1년보다 더 멀어져버렸다.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던 사람들은 등을 돌린 것도 모자라 비수처럼 날카로운 말들을 뱉어댄다. 정부가 돈으로 틀어막은 것은 유가족의 입이 아닌, 사람들의 눈과 귀인가 보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어찌 그리 모질 수 있을까. 유가족들은 1년 전의 오늘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 할 뿐 아니라, 당신들에게도 닥칠지 모르는 4월 16일의 불행을 막으려 그토록 처절하게 외치고 있다. 누군가의 잘못이 있다면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싶을 뿐인데. 뭐가 그리 두렵고 무서워서, 이 나라는 모두 잊으라고 몰아붙이는 것일까.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들의 얘기를 놓치지 않는 것. 멀리하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목소리나마 보태는 것이 전부다. 4월 15일, 부산역에서 있었던 1주기 추모제에 참여했다. 예술은 예술가가 자신과 타인, 세상을 기억하는 방법이다. 그림쟁이들은 그림을 그리고, 춤꾼들은 격렬히 몸짓한다. 시인들은 피로 쓴 시를 토해내고, 가수는 그 시를 노래한다. 나는 노란 종이배에 다짐들을 적었다. 있는 힘껏 ‘기억하겠다. 잊지 않겠다.’고. 이어서 글을 적는다.
그리고 삶의 역설을 견디면서, 더 사랑하고 더 행복하게 살아가리라는 다짐도 보탠다.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결코 ‘가만히’ 있지 않겠다. 당신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인생의 방식으로, 일상의 혁명으로. 삶으로만 증명할 수밖에 없는 주위의 작은 변화라도. 나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살아갈 것이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4월 16일의 같은 시간에 존재했던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죄스럽지 않게. 살아감으로써 기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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