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노래 다른 노래> Plan R - 6
베토벤이 남기고 간 바이러스
지금까지 ‘어릇광대의 같은 노래 다른 노래’를 써 오면서 크게 두 종류로 나눠서 글을 쓰기로 했었다. 하나는 거의 ‘불후의 명곡’만 한 리메이크곡을 다룬 Plan R, 나머지 하나는 춤과 관련된 노래와 음악, 그리고 춤을 담은 Plan D 였는데, 스스로의 반성, 그리고 주변에서 춤 쪽으로 종사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아직까지 춤에 대해서 글에 담기에는 내 지식이 부족하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하여, 한동안은 Plan D를 닫을 예정이다. 이렇게 어릇광대의 불후의 명곡으로 가는건가!!!!
그리고, 기존에 글을 써오면서 ‘Plan R이 너무 불후의 명곡 위주로만 가는 것 같다.’라는 지적을 받았다. 인정하는 부분이다. 워낙 광팬인 탓에(근 4년동안 무한도전을 생방송으로 본 적이 없다. 심지어 그 흥했다는 토토가도 재방으로 봤다!!!) 불후의 명곡에만 편향된 글을 썼던 것 같다. 지적을 받아들여 얼마 전 다시 문을 연 그리고 언제 닫을지 불안한 ‘나는 가수다’ 뿐만 아니라, 오디션 프로그램, 그리고 진짜 리메이크 앨범의 노래에 대해서도 식견을 넓혀서 다양한 글을 쓸 수 있도록 하겠다 하겠습니다ㅠㅠ
오늘 쓸 글은 지금까지의 Plan R과는 조금 다르다. 무려 클래식이다. 하지만 클래식이 출동한다면? 클! 래! 식! 사실, 클래식 음악 또한 Plan R의 취지와 어울리는 에피소드가 많은데, 쓸 생각을 이제야 했다. 그러니까 불후의 명곡에서 좀 벗어나라고 오늘 소개할 원곡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 8번(비창)이다.
피아노 소나타 제 8번은 ‘비창 교향곡’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798년부터 1799년까지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시기의 베토벤의 음악은 이 비창 뿐만 아니라 피아노 소나타 1번 ,교향곡 1번(일명 베토벤 교향곡) 등이 있는데, 클래식 음악인들 사이에서는 이 시기의 베토벤의 음악이 하이든이나 모차르트 등의 기존에 있던 기라성같은 클래식 연주자들을 기점으로 정형화되어있던 방식에서 벗어나, 베토벤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는 베토벤의 곡 중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편이다. 총 3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비창’은 여러 곳에서 쓰이거나, 각색되었다. 2악장 ‘Adagio cantabile'는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가요에서 샘플링으로 쓰였는데,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알려진 샘플링만 해도 ’휘성 - 사랑은 맛있다‘, ’7공주 - 소중한 사랑‘. ’마리아 - 내 영혼을 그대에게‘, ’Louise Turker - Midnight Blue', 'Key's piano - Remember', 'J walk - 일년째 프로포즈‘, ’Chen Min - Phoenix', 'Noela - Happiness', 'Joseph Mcmanners - Music of the angels', '스즈키 아이 - そっと‘ 등 어마어마하다. 샘플링 뿐만 아니라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용되기도 했는데, 1악장 ’Grave - Allegro di molto e con brio'는 우리 나라에서 방영된 드라마인 ‘어느 멋진 날’에서, 2악장은 그 유명한 ‘노다메 칸타빌레’ 뿐만 아니라 일본 애니메이션에도 잊을만하면 나왔다. 3악장 역시 게임 BGM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우리 나라 프로야구에서 홍성흔 선수가 롯데 자이언츠에 있던 시절 타석에 등장할 때 이 곡을 변형해서 사용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수많은 재창조를 이뤄낸 ‘비창 소나타’에서 오늘 소개할 곡은 무엇일까. 사실 짐작한 사람도 있으리라 본다. 그 유명한 진짜 유명해? ‘베토벤 바이러스’다. 똥덩어리 아닙니다 김명민 아닙니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을 강타했던 오락실 리듬게임 '펌프 잇 업'에 수록되었던 곡이다. 영상 속 그림에서도 알 수 있지만 Banya 작곡으로 되어 있는데, Banya는 펌프 잇 업의 수많은 곡에 참여한 작곡팀이고, 이 베토벤 바이러스는 당시 이 Banya 팀 소속이었던 작곡가 오상준(닉네임은 SJ로 알려져 있다)이 작곡했다. 당시 10대 20대 중에 펌프 잇 업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이 노래는 '또 다른 진심', '터키 행진곡' 과 함께 '펌프 잇 업 3대 국민곡'이라는 명성을 누렸으며, 베토벤 바이러스는 이 세 곡 중에서도 가장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사실 '펌프 잇 업'이라는 게임이 2000년대 초반 이후로는 점점 인기가 사그라들고 아케이드 오락실의 시장이 줄어들면서 요즘은 '아직 펌프가 있냐?', '펌프 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냐?'라는 반응들이 대부분인데, 놀랍게도 아직까지도 펌프 잇 업이 새 버전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14년 12월에 새로운 버전인 '펌프 잇 업 프라임'이 발매되었고, 한국에서는 인기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남미, 동남아를 중심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면서 세계 대회도 수 차례 개최되기도 했다.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곡은 단순히 게임 수록곡, 인기를 누렸던 곡을 넘어서, 게임 음악 방면에서는 상당히 큰 의의를 가지는 곡이기도 하다. 바로 '클래식 리메이크를 통한 게임 음악 제작'의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라는 점이다. 이전에 리듬 게임이라는 장르가 많지도 않았고(1) 수록곡 또한 대부분 가요 혹은 자체적으로 제작한 곡인 경우가 많았는데, 시중에 알려진 게임 중에서 가장 먼저 클래식 리메이크를 시도했던 게임이 펌프 잇 업이었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두 번째 작품이지만(2), 이 곡의 엄청난 대박은 펌프 잇 업 뿐만 아니라 다른 리듬게임을 넘어 게임 음악이라는 넓은 방면에서도 클래식 리메이크가 유행처럼 번져나가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요를 제외한 기존의 자체 제작곡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반면, 클래식 리메이크는 사람들의 귀에 익숙한 음을 통해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이용자들이 많아지는 효과를 누리기도 한다. 펌프 잇 업은 클래식 리메이크를 가장 잘 하는 리듬게임으로 평가받고 있다. 새로운 버전이 나올 때마다 클래식을 기반으로 한 곡들을 수록하고, 오늘의 주인공인 베토벤 바이러스 또한 2014년 12월에 발매된 새 버전 '펌프 잇 업 프라임'에서 '바로크 바이러스'라는 이름으로 재편곡되기도 했다. 다른 게임에서도 이 비창 3악장을 'V3' 등의 곡명으로 편곡하기도 했을 정도로, 이 노래가 게임 음악계에 남긴 여파는 어마어마하다고 볼 수 있다.
'토토가'의 대흥행 이후로 90년대의 추억을 회상하는 글들, 기사들, 이벤트들이 흥하는 요즘 시대이다. 옛날 게임이 되어버린 '펌프 잇 업' 또한 얼마 전 롯데월드에서 추억팔이용 행사가 열린 적이 있었고, 올해 2011년에 이어 4년만에 다시 세계대회가 개최될 예정이라고 한다.
필자는 펌프 잇 업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플레이를 했었고, 아직도 플레이를 하고 있는 유저 중 하나다. 잊혀졌던 추억이 다시 회상되고, 다시 사람들의 기억과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접어뒀던 흑역사가 아닌, 잊혀졌던 추억이니까.
마지막으로, 얼마 전 SNS에서 '한국 유학생의 펌프 농락'이라는 제목으로 화제가 되었던 펌프 잇 업 플레이 영상을 첨부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한국의 펌프 잇 업 초고수 중 한명이자 개발자로도 근무한 적이 있었던 신동민(B.P.M)의 2011년 대만 공연 영상으로, 곡명은 '베토벤 바이러스'이다.
<각주>
(1) 이 당시에 사람들이 알 만한 리듬게임이라고는 DDR과 펌프 잇 업, 그리고 막 개발된 EZ2DJ 정도였다.
(2) 첫 번째 클래식 리메이크 곡은 '터키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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