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노래 다른 노래> Plan R - 2
아니 벌써? 아니, 이제야.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노래를 나누면 어떻게 될까? 힘이 덜 들겠지 뭔가 멋있다. 솔로곡이 아닌 듀엣, 혹은 여럿이서 부르는 노래에는 떼창 말고 혼자서는 낼 수 없는 시너지가 있다. 마치 대화를 나누듯 주고받는 흐름, 여럿의 목소리가 동시에 어우러지는 하모니의 아름다움은 노래를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에게도 '듀엣곡을 한 번쯤은 불러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많은 그룹이 있지만, 가끔 기존의 그룹이 아닌 이색적인 조합을 이루어 노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연말의 각종 연기 & 연예대상 등에서 펼쳐지는 축하공연, 혹은 가요대전이나 골든디스크 등의 음악 관련 시상식에서의 공연에서는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노래들을 보고 들을 수 있다.(1) 그리고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등의 기성 가수들의 경연 프로그램에서도 피처링 혹은 콜라보의 형식으로 많은 일회성 팀이 결성되어(2) 듀엣, 혹은 여럿이서 함께 노래를 부르곤 한다.
오늘 포스팅할 곡 역시 듀엣곡으로, 사실 원래부터 듀엣곡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두 남자의 만남은 신선한 무대를 우리에게 선사했다. 불후의 명곡에서 '오만석 & 홍경민'이 부른 산울림의 '아니 벌써'이다.
'아니 벌써'는 1977년 12월에 발매된 3인조 그룹 '산울림'(3)의 데뷔 앨범인 1집 '아니 벌써'의 타이틀곡으로, 이 노래는 발매된 지 40년이 다 되어가지만 중장년층 뿐만 아니라 젊은 층에도 잘 알려져 있는 노래이다. '아니 벌써' 이후의 가사를 잘 모르는 게 함정 유행어나 패러디에도 많이 쓰였고, 부산 KNN 라디오의 '벼룩시장' 광고에서도 이 노래를 차용했다.
사실 '산울림'이라는 밴드 하나만으로도 쓸 거리가 너무 많다. 대한민국 음악사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밴드라는 말이 정말 어울리지 않나 싶다. '아니 벌써' 뿐만 아니라 이들의 음악은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전 세계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1~3집 앨범은 아직까지도 외국 록 마니아들에게 있어 인기 수집본이고, 이들의 영향을 받아 1999년에 일본인들로 구성된 밴드 '곱창전골'(4)이 생기기도 했을 정도였다.
'아니 벌써 해가 솟았나 창문 밖이 훤하게 밝았네 / 가벼운 아침 발걸음 모두 함께 콧노래 부르며 / 밝은 날을 기다리는 부푼 마음 가슴에 가득 / 이리저리 지나치는 정다운 눈길 거리에 찼네 / 아니 벌써 밤이 깊었나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네 / 해 저문 거릴 비추는 가로등 하얗게 피었네'라는 짧은 가사와 함께, 이 노래에는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파격이 담겨있고, 그들을 전설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5)
'오만석 & 홍경민'의 '아니 벌써'는 2014년 3월 8일 방영된 불후의 명곡 '가수와 배우 콜라보 Happy T♡gether 특집' 방송에서 나온 노래이다. '오만석 & 홍경민' 팀은 3번으로 나왔는데, 앞서 1번으로 나와 402표로 승리했던 '강부자 & 김태우' 팀의 '그대 그리고 나'(소리새 원곡)를 맞아 416표라는 상당한 고득점으로 승리했고, 이후 3연승까지 기록했으나 마지막으로 나와 '낭만 고양이'(체리필터 원곡)를 부른 '양희경 & 백퍼센트' 팀에 아쉽게 3표 차로 패배했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이 편의 방송이 '가수와 배우'의 조합이었는데, 오만석을 단순히 배우로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반칙 아님?(6) 물론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긴 했지만, 오만석의 본업은 뮤지컬 배우이다. 데뷔도 1999년 뮤지컬 '파우스트'로 시작했고, 출연한 뮤지컬만 총 21편에 이르는 데다 그중에는 '그리스', '헤드윅'같은 굵직굵직한 작품들도 부지기수다. 많은 뮤지컬 무대에 오르면서 오만석은 엄청난 노래 실력을 선보였는데, 그가 부른 'Origin of Love'는 조승우와 조정석의 버전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7)
이 당시 홍경민은 'Plan R - 1'에서 언급했듯 불후의 명곡에서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고, 오만석은 이 방송 4주 전에 종영한 KBS 연속극 '왕가네 식구들'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던 때였다. 두 사람이 함께 하게 된 계기는 역시 뮤지컬이었는데, 둘이 같은 뮤지컬을 준비하면서 연습이 끝나고 냉장고에 있던 고량주를 바닥냈다는 에피소드를 공연 전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허세달의 연기는 설마 술 주정으로부터? 그들이 준비하던 뮤지컬이 무대에는 오르지 못하면서, 두 사람의 공식적인 합동 무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시건방춤으로 시작되는 무대, 오만석의 유행어 '미춰버리겠네', 관객들과 하나 되는 후크송 떼창 노래는 400표가 넘는 고득점을 받을 만 했고 우승에 거의 근접했을 정도로 좋은 반응을 받았다. 사실 오만석이 최근에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모습을 보이면서 노래하는 오만석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 방송을 통해 마치 오랜 갈증이 해소된 듯한 기분이랄까?
새로운 만남은 언제나 신선하다. 그리고 그 만남이 즐거운 만남이라면, 신선함을 넘어 신 날 것이다. 오만석과 홍경민의 만남은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즐겁고 신 나는 만남이었다. '아니 벌써'를 보면서 '벌써'가 아닌 '왜 이제야'라는 기분이 들었을 정도로.
홍경민은 불후의 명곡에서 왕성히 활동 중이고, 오만석은 현재 뮤지컬 '레베카' 전국투어를 진행 중이며 올해 12월부터 '킹키부츠' 무대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멋진 두 남자가 펼쳐나갈 멋진 앞길을 기대해 본다.
<각주>
(1) 최근에는 이런 이색적인 무대가 자주 열리는 편으로, 음악프로의 특집 방송에서도 간간이 볼 수 있다.
(2) 이러한 풍토를 비판하려는 의미가 아닙니다. 특수성을 강조하려고 하는데 떠오르는 어휘가 없어서..ㅠㅠㅠㅠ
(3) 최초에는 3인조였으나, 2008년에 멤버 김창익이 사고로 사망하였다.
(4) '곱창전골'의 초창기 멤버이자 드러머가 양평이형으로 더 알려진 하세가와 요헤이이다. 그는 이후 김창완밴드에서도 함께 음악을 하게 된다.
(5) 1집 앨범이 40만 장이 팔렸는데, 당시에는 엄청난 기록이었다.
(6) 그렇게 치면 이지훈 & 에일리 팀이 더 반칙이긴 하다. 이지훈은 90년대에 '왜 하늘은'으로 대스타가 된 가수 출신이니까.
(7) 2005년에 이 노래를 불렀던 '헤드윅'으로 제11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축하공연으로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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