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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첫날 밤

[vol.3 : 밤] 쏜애플 음악의 가사에 대한 양적·질적 농담

[vol.3 : 밤] 쏜애플 음악의 가사에 대한 양적·질적 농담

- 잠들지 않는 쏜애플의 ‘밤’을 중심으로

 

 

 

 

 

♬ 낯선 열대 - 쏜애플(Thornapple)

 

 

 

 

쏜애플의 밤은 불안하다. 그 밤, 그들은 남들과 달리 잠들지 못한다. 밤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불러낸 것은 단연 그들이었지만 사실은 낮과 어울리기도 하는데, 쏜애플의 음악은 두종류로 나뉜다. 차가운 밤과 뜨거운 한낮, 이 두 가지를 모두 지닌 모순적인 음악. 극적인 선율과 넓은 음역을 오가며 비약하는 중성적인 보컬, 독특한 베이스 라인과 중심을 잃지 않는 드럼, 곡분위기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기타 톤과 기교가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그들의 음악은 한 가지 장르로 묶을 수는 없지만 분명 그들만의 색이 있다. 그리고 가장 그 색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은 역시 가사. 문학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가사는 모두 보컬 윤성현이 작사했는데, 진정성을 중요시하는 그답게 모국어를 고집하며 내밀한 감정을 섬세한 언어들로 풀어낸 문자들은 그의 내면과 쏜애플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충실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런 연유로, 쏜애플의 가사를 집중탐구해보기로 했다.

  

 

이번호에 실릴 글을 작업하면서 ‘지금 이것은 희대의 뻘짓이 될 것’이라는 직감이 왔다. 참고로 필자는 각각의 앨범에 몇 달씩은 거의 잠겨있었는데, 듣다보면 자꾸 들리는 단어들이 있기 마련이다. ‘반복되는 단어들, 그것은 곧 그 세계가 가진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 핵심 열쇠일 것.’ 이러한 판단 아래 1집 <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에서 2집 <이상 기후>까지 2곡의 연주곡을 제외한 총 18곡의 가사들을 전부 살펴보았고 꽤나 쓸모없는 몇 가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쏜애플 가사는 노래의 분위기가 밤과 낮으로 나뉘는 것처럼 두 세계로 나뉘어 대립하는 구도를 이룬다. 화자가 도달하려는 세계는 낮으로 상징되는 것으로 바람도 같은 맥락에서 긍정적으로 쓰인다. 낮은 5번, 아침은 4번, 바람은 6번 언급된다.

  

  

♬ 물가의 라이온 - 쏜애플(Thornapple)

 : 쏜애플의 '한낮 분위기'를 대표하는 곡  

 



 

아래는 그 예문들의 일부이다.

 

  

‘난 한 에 뜬 보이지 않는 달’ 「빨간 피터」中

‘나의 이 죽어 버리기 전에는 되돌아갈게’ 「살아있는 너의 밤」中

‘영락없는 한낮의 주민이 되어

쓰라려도 내 몸이 다 녹아도 한 걸음 앞발을 내딛는다’ 「물가의 라이온」中

‘끝나지 않는 긴 한 을 바랬지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 가고 싶었지’ 「플랑크톤」中

‘오래전 멎어버린 바람을 목 놓아 기다리네’ 「암실」中

 

  

분명히 화자의 낮은 이상향이자 지향점으로 판단되며 바람 또한 긍정적인 세계를 이루는 한 부분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나 ‘한낮의 주민이 되어’와 같은 가사는 어쩔 수 없이 니체를 떠올리게 하는데 확실히 이전의 인터뷰에서 윤성현은 니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밝힌 적이 있으며「물가의 라이온」의 사자도 니체의 3단계 변화과정에 등장하는 그 사자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라 하였다.

 

  

이전 인터뷰 일부 참조

성현 : 니체의 ‘짜라투스트라’ 보면 비유적으로 낙타에서 사자로, 결국은 무엇인가를 창조해내는 아이가 되잖아요. ‘위버멘시’는 니체도 도달 못한 상태고요. 해야만 하는, 닥쳐오는 것들을 물어뜯는 사자가 되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어느 날 문득 떠오른 ‘물가에 서 있는 사자’란 것으로 이미지화된 것이고요. 왜 ‘사자’가 아니고 ‘라이온’이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쏜애플과 가시사과의 관계하고 비슷하겠죠.

 

 

같은 맥락에서 니체를 가져와 생각할 때, 그의 한낮은 니체가 말한 인식의 태양이 떠오르는 시간인 ‘정오’를 뜻할 가능성이 높다. 니체에 의하면 초인은 ‘정오의 태양에 심장을 꺼내어놓고도 한 치도 부끄럽지 않을 자’이다. 이를 미루어볼 때 화자가 되고자하는 것은 니체의 초인이 아닐까? 지금은 사자가 되기에도 급급하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밤은 어떨까? 밤은 화자가 견뎌내야하는 고독하고 불안한 위태로운 시간이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쓰였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지점이 있다. 화자가 은연중 그것을 즐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기 때문. 특히나 애착을 가진 어떤 대상 ‘너’와 함께할 수 있는 상황이 주로 밤이기 때문일까? 자기 파괴적인 집착이 일어나는데, ‘비’ 또한 같은 의미를 지닌다. 밤은 무려 33번, 유사어인 저녁은 2번, 비는 5번 등장한다.

 

  

♬ 살아있는 너의 밤 - 쏜애플(Thornapple)

 

 



 

 

아래는 그 예문들의 일부이다.

  

‘진실도 없는 축제가 계속 되던 ’ 「오렌지의 시간」中

에 잠드는 남들은 돌고 도는 네 개의 계절’ 「시퍼런 봄」中

‘숨이 막히니 오늘 은 혼자 잠을 잘래요’ 「백치」中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 네 몸이 살아나는 ’ 「살아있는 너의 밤」中

‘오늘도 식지 않은 나에게 이 오네 오늘도 이야 오늘도 이야’ 「베란다」中

 

 

♬ 아가미 - 쏜애플(Thornapple)

 

 

 

 

 

가 내리면 우산 없는 그대가 돌아가지 않을 것 같은 기대를 하게 돼요

...(중략)...이 가 그치면 더 이상 흘릴 나조차 없을 거야’ 「아가미」中

가 그친 뒤에 부는 바람은 좋아한다 생각해’ 「남극」中

 

 

쏜애플 가사의 키워드들 중 ‘나’와 ‘난’이 각기 66번, 27번으로 도합 93번 반복되고 ‘너’와 ‘넌’이 각기 33번, 4번으로 37번 반복되는 것을 제외하면(조사는 차마 세어볼 수조차 없었다) 역시 밤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일 것이다. 밤은 총 8곡에서 등장하는데 곡점유율도 높은 편이다. 이는 불면을 겪는 윤성현 본인의 창작환경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이전 인터뷰 일부 참조

성현 : 다른 음악도 될 수 있고, 살면서 한 번씩 느끼게 되는 감정들. 전 선천적으로 불면을 자주 경험하는 편인데요. 잠을 좇아 가다가 잠이 든 것도 아니고 깬 것도 아닌 상태에서 떠오르는 이상한 심상들에서 영향을 받죠. 단어 그 자체의 의미보다는 다른 종류의 심상, 내용이상의 다른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게 좋은 가사라고 생각해요. 중의적인 표현을 넣으려고 많이 노력해요. 오해의 소지, 곡해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싶은 거죠. 

 

  

많은 아티스트들이 밤을 사랑하고 증오하는 것과 같이 그 또한 주로 밤을 통해 음악을 만나게 되는 모양이다. 노랫말 속 화자들은 대체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잠은 11번, 그와 연관되는 ‘꿈’은 6번, ‘깨다’는 10번 나온다. 밤이 가진 이중성을 이 단어들도 가지고 있는데, 잠은 도피의 수단으로 쓰이는가하면 안식의 공간으로 묘사된다. 이에 따라 꿈이나 깨어나는 행위도 긍정과 부정의 이미지를 동시에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런 모순적인 이미지는 ‘아름다움’을 대할 때에도 나타난다.

 

  

♬ 플랑크톤 - 쏜애플(Thornapple)

 : 가장 처음 들었던 곡. 놀랍다.

 

 

 

‘찌푸린 날엔 아름다운 곳의 꿈을 꾸네’ 「플랑크톤」中

아름다운 것만을 사랑하는 당신들은

내 뒤뚱거리는 몸짓이 아무래도 싫을 테지’ 「너의 무리」中

 

 

자신이 추하다고 생각하는 화자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동경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망 또한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외에도 주목할 만한 단어들이 몇 가지 더 있지만 짧게 문장으로 언급하자면 화자는 ‘낯선’(5번) 세계에서 안간힘을 쓰며 ‘노래’(7번)하는 것으로 ‘숨’(11번)을 쉬며 이 ‘계절’(10번)들을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쏜애플 가사의 특징적인 단어들을 기워내 그들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구현하고 들여다보았다. 차가운 밤과 뜨거운 한낮으로 양분되는 그들 음악의 분위기는 대립하는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부감했을 때에는 또 그 모순에 의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밤에 잠들지 않는 그가 지켜내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이며, 닿고자하는 낮은 어떤 모습일까? 쏜애플의 문학적인 색채를 더욱 음미하기 위해 필자가 분석한 사항을 염두에 두고 감상한다면 조금 더 그들의 세계를 가까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유의한 시간을 쏟아 부은 이 무의미한 농담이 당신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길, 작은 바람을 불어넣어본다. 물론, 이토록 뛰어난 문학적 표현력에도 불구하고 쏜애플의 가사는 오직 음악으로 존재할 때 가장 높이 비상할 수 있다.

 

 

추신. 언젠가 필자의 잉여력이 허락한다면 체력상의 문제로 손대지 못한 안타까운 부분들도 진행해볼 의사는 있으나 웬만하면 누가 좀 후속 농담을 진행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제발.

 

 

♬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 쏜애플(Thornapple)

 : 심지어 커버조차! 정말이지 아름답다.

 

 

 

 

 

 

 

♬ 이유 - 쏜애플(Thornapple)

 : 쏜애플의 거의 전곡이 주옥같지만, 이곡은 빼놓기 너무 아쉬워서 마지막으로 첨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