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음악 종류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하기가 참 애매하다. 물론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가 있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장르에 대한 호불호의 편차가 크지 않다. 사실 음악 세계관이 굉장히 잡식이다. 식생활도 잡식이더니만 역시 장르, 국적, 연도를 가리지 않고 그저 들었을 때 좋은 음악이면 된다는 마인드라 폰 안에 있는 음악들 역시 각양각색이다. 1950년대의 노래가 있기도 하고, 아프리카의 음악이 있기도 하다. 월드클라스 그래도 그중에서 굳이 좋아하는 부류의 음악을 정해보자면, '리메이크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ㄱ...아닙니다 (출처 : SBS 야인시대)
노래의 다양한 변화 양상을 즐긴다고 해야 할까. 원곡이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그 기대감에 대한 충족을 즐기는 편이다. 즐겨 보는(+ 봤던) TV 프로 또한 그런 양상을 잘 보여주는 것들로 오래전에 MBC에서 했던 '쇼바이벌'부터 '슈퍼스타 K', 'K-pop star',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등은 언제나 빠지지 않고 생방송을 챙겨보았다. 잠깐 '위대한 탄생'은?? 또한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윤도현의 러브레터', '음악여행 예스터데이'같은 프로들뿐만 아니라 각종 방송사에서 연말에 하는 가요 프로그램(MAMA, 가요대전 같은 프로들)도 빠지지 않고 시청한다. 연말에는 원곡이 아닌 다양한 편곡으로 무대를 선보이기 때문에 그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늘 포스팅할 곡은 지금까지 보고 들어온 수많은 리메이크곡과 편곡 중에서도 특히 손에 꼽을 만큼 큰 감동을 줬던, 그리고 한동안 그 곡에 미치게 만들었던 노래이다. 마음만으로 하자면 끌어오고 싶은 곡은 너무나 많았지만, 그것들을 전부 다 실었다간 글이 산으로 갈 것이라는 예감이 엄습했다. 눈물을 머금고 곡들을 추려내기 시작했고 벼와 쌀을 깎는 뼈와 살을 깎는 고통 끝에 선정된 노래는, 위에서 언급된 프로그램에서 나온 노래이지만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던, 그래서 이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언급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크게 반영되었다.
수많은 고민과 멘붕 끝에 낚아올린 노래는...? (출처 : 네이버 웹툰 '자율공상축구탐구만화')
여러 의미에서의 기적
'기적을 노래하라'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 매 시즌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어쨌거나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시즌 별 우승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 또한 가요계 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고,(이 점에서 슈스케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과 차이가 느껴지는 점이,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은 '가수'를 뽑는 느낌이라면 슈스케는 제목 그대로 '스타'를 뽑는 느낌. 타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 가수가 아닌 다른 활동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위대한 탄생'의 손진영 정도?) 방송에서 나왔던 노래들은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불리고 언급되고 있다.
역대 슈퍼스타K 로고. 시즌 6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시즌 1은 당시에 큰 관심이 없어서 보지 않았고, 시즌 2와 3은 군 복무 시절 봤다. (취침 시간 이후에 했기 때문에 주로 토요일 오전에 재방송으로 볼 때가 많았다.) 시즌 4는 슈퍼위크 때부터 챙겨봤고, 시즌 5는 슈퍼위크 때부터 안 봤다(...) 시즌 5가 워낙 망한 탓에 시즌 6을 한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는데, 심사위원으로 김범수가 합류한다는 소식에 설레고 있다. 오오 김범수 오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본 시즌은 시즌 3이고, 가장 좋아하는 가수 역시 울랄라세션이지만, 오늘 포스팅할 곡은 시즌 4에서 선정했다.
트위터에서 어떤 사람이 시즌 4를 한 줄로 요약한 트윗을 봤는데, 해석이 기가 막혔다. '본격 유승우가 천재 소리 듣고, 김정환이 우승후보 소리 듣고, 로이킴이 쌈닭 소리 듣고, 홍대광 & 딕펑스가 극찬 받고 싸우다가 정준영 & 로이킴이 문자투표로 우승하는 프로그램'이라는 트윗은 우스개소리라고 치부하기에는 정곡을 찌른 말이었다. 시즌 3에 비해서 시청률이나 문자 투표는 줄어들었지만, 앞에서 언급한 트윗처럼 문자투표로 인한 반전 결과가 매 생방송마다 나왔던 시즌이었다.(슈스케 쭉 보면서 이승철 심사위원 멘붕한 표정을 본 것도 시즌 4에서 처음이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해 온 슈퍼스타 K 중에서 가장 논란도 많았고 이야깃거리도 많았던 시즌 4. 오늘의 노래는 시즌 4에 등장했던 'Bed of roses'이다.
사실 원곡을 들어본 건 슈퍼스타 K 이후에 들어봤는데, 슈퍼스타 K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맛이 느껴졌다. 존 본 조비의 마성의 목소리, 절벽 위에서 연주하는 리치 샘보라의 기타 연주. 왜 이 노래가 대세를 거스르고 히트를 쳤는지, 왜 아직까지도 사랑받는 노래인지 알 수 있었다.
Bon Jovi 하면 보통 'Always'나 'It's my life'를 많이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슈퍼스타 K에서는 이 'Bed of roses'가 선택을 받았다. 그리고 이 노래를 선택한 도전자는 바로 정준영이었다.
미친 사람이 부른 미친 사랑의 노래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출처 : 엠넷 '슈퍼스타K 4')
슈퍼스타 K 역사상, 아니 요즘 연예계에서 이런 캐릭터가 또 있을까. 첫 3차 예선 방송 때부터 4차원 이미지를 주체할 수 없이 발산하더니, 이게 시선집중 용 1회 성 캐릭터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정말 놀랐다. 과거에 '얼짱시대' 등 타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고 하지만 나중에 안 사실이었고, 슈퍼스타 K 4를 보는 내내 정준영의 미친 존재감에 푹 빠졌다. 이승철 심사위원이 했던 '슈퍼스타 K 최고의 존재감'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다. 지금은 가수보다는 연예인예능인 으로 더 자주 비치고 있지만, 여전히 가수 정준영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정준영의 'Bed of roses'는 2012년 10월 19일 생방송 본선 2주차에 등장했다. 생방송 2주차 미션은 '라이벌 미션'으로, 동시대에 활동했던 2~3팀의 가수의 노래를 대결 형식으로 경연했다. (토너먼트는 아니고 그냥 둘셋둘둘 묶었다.) '조용필 & 김현식', '김연우 & 김현철 & 이문세', '비 & 세븐'과 함께 'Avril Lavigne & Bon Jovi'가 경연 주제로 정해졌고, 9명의 참가자 중에서 7번째로 경연을 하게 된 정준영의 선택은 바로 'Bed of roses'였다.
(경연 영상. 2분 52초 이후는 6번 참가자인 안예슬 심사평. 아쉽게도 이 영상에서 정준영 심사평은 잘렸네요.)
당시에 생방송을 보고 난 엄청난 전율과는 다르게, 심사위원들의 평은 전반적으로 좋지 못 했다. 특히 이승철 심사위원의 '모창만 하는 것 같다.'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심사위원 점수 또한 그 결과를 반영했는데, 이승철은 87점으로 연규성, 유승우와 더불어 최하점을 줬고, 윤건 역시 88점으로 연규성 다음으로 낮은 점수를 주었다. 그나마 윤미래 같은 경우 좋게 평가를 해서 딕펑스 다음으로 높은 점수인 89점을 주었다. 심사위원 점수 합계 264점. 9명 중 7위의 기록이었다.
(여담이지만, 9명 중 7위의 기록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각 참가자들의 점수 차이가 크지는 않았다. 시즌 4에 들어서 전체적인 실력의 상향 평준화 때문인지 전 시즌 끝판대장 울랄라세션 덕분인지 심사위원 점수의 편차가 크지 않았다. 위의 시즌 4 생방송 2주차를 예로 들면, 이승철의 경우 최고점 91(딕펑스) 최저점 87(정준영, 연규성, 유승우), 윤미래는 최고점 90(딕펑스) 최저점 86(허니지, 안예슬, 김정환), 윤건은 최고점 93(허니지), 최저점 85(연규성)이었다. 전체적인 편차가 크지 않았기에 등수에서도 큰 차이는 없었다. 정준영이 264점으로 7위를 기록했는데, 6위인 안예슬은 불과 1점 높은 265점이었고, 생방송 2주차에서 심사위원 점수 1위를 기록한 딕펑스의 점수는 273점.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슈퍼스타 K4 생방송 2주차 심사위원 점수표. 전체적인 편차와 각 등수 별 차이가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엔하위키 미러)
어쨌든, 심사위원 점수에서 7위를 기록한 정준영은 탈락 위기에 놓였으나 최종 결과는 다음 라운드 진출. 10%의 사전 인터넷 투표와 60%의 대국민 문자 투표를 합산한 결과 당시 인기 짱이었던 유승우 다음인 2등까지 치고 올라가는 미라클 한 일이 일어났고, 이때부터 정준영이 시즌 2의 강승윤을 뛰어넘는 '곱등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생방송 본선들을 본다면 2주차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게 함정.)
하지만 며칠 후 엠넷의 마이너스의 손을 거친 공식 음원이 나왔을 때, 그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엠넷의 편곡이야 시즌 3 때 충분히 겪었기에 모 아니면 빽도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생방송에서 듣고 느낀 마음속 순위와 음원으로 생각한 순위가 너무 달랐다. 생방송 때 너무나도 갈라지는 목소리로 인해 심사위원 점수 최하점을 받고 탈락했던 연규성의 '어둠 그 별빛'은 음원을 통해 절규하는 느낌이 잘 어우러지는 명곡으로 재탄생했고, 결정적으로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은 정준영의 'Bed of roses'였다.
슈퍼스타 K 시즌 4에 들어서 '음원형 가수', '스튜디오형 가수'라는 말이 생겨났었다. 생방송 본선에서는 완전히 죽을 쒔는데, 이후에 나온 음원이 말도 안 되게 좋았던 몇몇 참가자를 지칭하는 말이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앞서 언급한 연규성과 정준영이다. 연규성은 일찍 탈락한 탓에 음원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는데, 홍대광과 라이벌 미션에서 불렀던 '말리꽃'과 생방송에서 부른 '예술이야'와 '어둠 그 별빛' 모두 음원의 평가가 굉장히 좋았다. 특히 '어둠 그 별빛'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생방송에서의 혹평과는 상반되게 찢어지는 목소리가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음원형 가수'의 끝판왕은 역시 정준영이다. 생방송 본선의 노래와 음원의 노래 차이가 너무나 극심했다. 대표적인 예가 생방송 3주차였는데, 'Go Back'이라는 미션에서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불렀는데, 그렇게 정준영을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듣기조차 참담할 정도의 무대가 나왔고, 심사위원들의 악평 역시 쏟아져서 7명의 출연자 중 압도적인 최하위의 점수를 받았다. 탈락이 거의 기정사실화된 분위기였지만 곱등이의 가호와 강승윤의 가호의 문자투표의 힘으로 살아남았고, 결국 Top 3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음원으로 나온 '그것만이 내 세상'은 생방송과는 다르게 안정되면서도 세련된 보컬로 호평을 받았고, 7곡 중에서 인기도 또한 중간 이상은 기록했다. (멜론, 싸이월드 등 주요 음원 사이트를 확인한 결과 7개의 곡 중에서 인기도 3~4위를 기록했다.) 이승철이 생방송 중에 했던 "음악적인 시선과 대중들의 시선이 이렇게나 다른 건가요"같은 이유에서든, 압도적인 팬덤의 힘이었든, 정준영은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결과 현재 1박2일의 고정 출연 멤버로서의 예능 활동뿐 아니라 가수 활동으로도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가수 활동에 대해서는 의견이 양분되는데, 안티팬도 많지만 그만큼 팬 또한 만만치 않게 많으므로 적어도 50%의 의견으로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nd the truth is, baby you're all that I need
어쨌거나, '방송인 정준영'보다는 '가수 정준영'이 좋다. 한때 3옥타브를 넘나드는 록 발라드에 미쳐 있다가 지금의 어느 정도 자리 잡힌 창법으로 바꾸게 된 것도 정준영의 영향이 컸고, 슈퍼스타 K 시즌 4를 하는 내내 길을 가든 집에 있든 어디서든 정준영의 노래만 미친 듯이 부르고 연습했다. 그의 살아온 인생과 멘탈은 자유분방함을 넘어선 똘끼가 충만하지만, 그의 노래에는 그 이면에 감춰진 진지함과 상처가 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했지만, 그의 삶에는 굴곡이 많았다. 어쩌면 그 아픔을 숨기기 위해서 더 날뛰고, 웃고, 미친척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치지 않기 위해 미쳐버린 한 남자의 노래에는, 로마 신화의 야누스 같은 두 얼굴이 동시에 스며들어있다고 생각한다. 그 진지함이 노래 속에서 느껴질 때, 미치지 않기 위해 미쳤던 또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있었으리라.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에서 정민 교수의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책이 있다. '미쳐야 미친다'라는 부제로 조선시대의 사파 마니아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인데, 무엇이든 간에 한 가지에 깊이 미쳐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교수의 말처럼 이들을 절대 비웃을 수는 없다. 그들은 당신의 모든 것을 그 한 가지에 올인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업적은 당시에는 비웃음거리가 되었을지언정 오래오래 역사 속에서 거울과 귀감이 되고 있다.
노래에 미친, 삶에 미친, 그리고 미침(狂) 그 자체에 미친 남자 정준영. 또 하나의 미침을 선물해준 알지는 못하지만 고마운 사람이다. 아직 그의 미침(狂)에 미치기엔(及) 많이 부족하지만.
Sitting here wasted and wounded at this old piano
Trying hard to capture the moment this morning I don't know
'Cause a bottle of vodka is still lodged in my head
And some blond gave me nightmares
I think she's still in my bed
As I dream about movies they won't make of me when I'm dead
With an ironclad fist I wake up and French kiss the morning
While some marching band keeps its own beat in my head While we're talking
About all of the things that I long to believe
About love and the truth and what you mean to me
And the truth is baby you're all that I need
I want to lay you on a bed of roses
For tonight I sleep on a bed on nails
I want to be just as close as the Holy Ghost is
And lay you down on bed of roses
Well I'm so far away That each step that I take is on my way home
A king's ransom in dimes I'd given each night
Just to see through this payphone
Still I run out of time Or it's hard to get through
Till the bird on the wire flies me back to you
I'll just close my eyes and whisper, baby
blind love is true
I want to lay you down on a bed of roses
For tonite I sleep on a bed on nails
I want to be just as close as the Holy Ghost is
And lay you down on bed of roses
The hotel bar hangover whiskey's gone dry
The barkeeper's wig's crooked And she's giving me the eye
I might have said yeah But I laughed so hard I think I died
When you close your eyes Know I'll be thinking about you
While my mistress she calls me To stand in her spotlight again
Tonight I won't be alone But you know that don't Mean I'm not lonely
I've got nothing to prove For it's you that I'd die to defend
I want to lay you down on a bed of roses
For tonight I sleep on a bed on nails
I want to be just as close as the Holy Ghost is
And lay you down on bed of roses
(해석을 달까 했으나 각자의 해석을 존중하자는 이유를 가장한 영어 시력 부족으로 따로 올리지 않았습니다. 보시는 분들 느낌 그대로 받아들이시길!)
어릇광대 (vjatls@naver.com)
Keep rockin, more over.
내가 가시 침대에 자더라도, 장미 침대에 눕히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이 여러분 앞에 나타났을 때
가진 모든 것을 줄 수 있을 만큼 열정 넘치는 사랑을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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