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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음감대♬/천방지방의 8090 수퍼마켙

1994년 가요톱10 1위 곡 모음 - 하반기 편



1993년 환경콘서트 '내일은 늦으리' 출연진의 단체 사진입니다. 몇 분을 아시나요? 


토토가 이후 90년대 가요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면서 90년대 가요계를 마치 이상향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만 그건 추억보정의 결과물입니다. 당시 가요계는 2000년대 중반 소몰이 정국이나 근래의 아이돌 정국 이상으로 논란과 비판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일본 가요와 팝 음악의 표절이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와중에 룰라 멤버였던 음신 이상민은 표절논란의 여파로 자해까지 했고 김민종은 가요톱10 골든컵을 눈 앞에 두고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립싱크로 인한 가수들의 자질 논란이 시작된 것도 90년대이며 H.O.T.가 아이돌의 시대를 연 것도 90년대입니다.

 

그리고 90년대 가요계와 현재 가요계의 간극보다는 80년대 가요계와 90년대 가요계의 간극이 더 커보입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성인가요, 곧 트로트가 가요계에서 상당한 지분을 차지했습니다.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박중훈이 분한 주인공 최곤은 88년 가수왕 출신의 한물간 가수인데요. 실제 88년 가수왕은 양대 방송사를 석권한 주현미입니다. 주현미는 이듬해에도 MBC 가수왕을 차지하고 현철은 89년, 90년 2년 연속으로 KBS 가수왕이 됩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김지애, 태진아, 노사연, 김정수가 가요톱10 골든컵을 차지했고 심지어 김수희는 '애모'를 내세워서 골든컵을 눈앞에 두고 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를 끌어내리고 골든컵을 가져갑니다. 하지만 트로트가 공중파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한 것은 이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기성세대의 취향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는 셈이죠.

 

또한 90년대 가요계의 변화는 팝 음악과도 결부시켜서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매주 빌보드 싱글차트 TOP 10이 일간지에 실렸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코미디 프로그램 중간에 팝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게 상상이 가시나요? 그 많던 대학가 음악감상실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LP판이 즐비하고 DJ가 뮤직박스를 지키던 음악감상실은 뮤직비디오(당시에는 영상음악이라는 표현이 애용됐습니다.) 세대에 발맞춰 변화를 추구하지만 90년대 중반 들어서는 거의 자취를 감춥니다. 공중파에서도 팝 음악 푸쉬를 그만두고 가요에 올인하게 된 것이 90년대 초반 즈음입니다. 80년대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 '쇼 비디오 자키'에서 팝 음악을 소개하던 인기 DJ 김광한이 90년대 들어서 가요톱10 진행을 맡은 것은 상징적입니다. 비록 KBS에서 '지구촌 영상음악(지영음이라고 줄여불렀죠.)'이라는 팝 전문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고 동명의 잡지도 나왔지만 90년대 중반에 종영됩니다. 케이블에서는 꽤 오래도록 팝 프로그램이 유지되었지만 그마저도 2000년대 들어서 자취를 감춥니다. 팝 음악에 몰려있던 젊은 세대가 가요로 쏠리면서 기성세대의 지분이 줄었다고 해석하면 무리일까요?

 

서설이 길었습니다. 하던 건 마저 해야죠. 이제 1994년 가요톱10은 하반기로 넘어갑니다.

 

7월 27일 / 8월 3일, 10일, 17일, 24일 : 투투 - 일과 이분의 일(5주 연속 1위, 골든컵 수상)



 

 

 

4인조 혼성 그룹 투투의 데뷔 곡입니다. 그룹의 리더인 키보드 주자 오지훈은 데뷔앨범 전 곡의 작사, 작곡에 프로듀싱까지 했습니다. 보컬 김지훈은 이미지와 다르게(?) 가창력이 괜찮았지요. 투투는 원래 남성 3인조 그룹이었지만 데뷔 직전에 황혜영이 합류하는데요. 황혜영은 달랑 두 소절을 불렀지만 투투 열풍을 견인했습니다. 후속곡인 '그대 눈물까지도'도 좋은 반응을 얻었고 당시 KBS 주말드라마인 '딸부잣집' 오프닝에는 '내 인생의 러시아워'라는 곡이 사용되는 등 94년 하반기 내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남자 셋 여자 하나라는 멤버 구성때문에 당시 흔히 룰라랑 비교되었고 룰라 기획사 사장이 데뷔 초기 룰라에게 투투 비디오를 보여주면서 들들 볶았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이듬해 초 오지훈이 뺑소니 시비로 구속되었고 투투는 기존의 김지훈, 황혜영 외에 남자 멤버와 여자 멤버를 한 명씩 영입해서 2집을 냅니다. '바람난 여자'가 선전했지만 1집의 파괴력에는 못 미쳤습니다. 당시 영입된 여자 멤버는 이후 영턱스클럽에서 활동하는 임성은입니다.

 

김지훈은 병역을 마치고 김석민과 듀크를 결성해서 'Starian', 'Party Tonight'으로 투투의 영광을 약소하게나마 재현합니다. 또한 서세원 쇼의 토크박스 코너에서 촉발된 개인기 열풍의 수혜자로 맹구 흉내로 예능에서 활약합니다. 하지만 마약 투약과 이혼의 풍파를 겪었고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2013년에 안타깝게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다.

 

8월 31일 / 9월 7일 : 부활 - 사랑할수록(2주 연속 1위)

 

 

 

이승철이 부활에서 탈퇴하고 방황하던 김태원은 대마초 흡입으로 두 번이나 수감되기도 하는데요. 몇 년간 폐인처럼 살던 김태원은 지인의 소개로 보컬 김재기를 만나 부활 3집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김재기는 음반이 완성되기 전에 교통사고로 숨지고 김태원은 빈 부분을 자신의 목소리와 그동안 녹음한 김재기의 목소리로 채워서 추모 형식으로 3집을 냈는데 '사랑할수록'이 여름내내 인기를 끌면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합니다. 3집 활동은 김재기와 목소리가 비슷했던 동생 김재희가 대신했고 그는 현재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랑할수록'과 '소나기'에 녹음된 김재기의 목소리는 연습 없이 한 번 불러본 데모버전인데 질이 좋아서 그대로 음반에 수록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9월 14일, 21일, 28일 / 10월 5일, 12일 : 김원준 - 너 없는 동안(5주 연속 1위, 골든컵)

 

 

 

1992년에 제일모직 의류브랜드인 '카운트다운'의 CF 모델 겸 신인 가수를 선발하는 프로젝트에서 뽑혀 데뷔한 김원준의 3집 수록곡입니다. 3집 타이틀 곡이었던 '짧은 다짐'이 표절 논란에 휩싸이자 재빨리 타이틀 곡을 '너 없는 동안'으로 교체했고 데뷔 곡인 '모두 잠든 후에'가 아깝게 놓쳤던 골든컵을 가져다 줍니다. 당시 유치원 생이던 저는 치마 입은 남자의 모습에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20년도 더 지난 지금과 외모에 큰 차이가 없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10월 19일, 26일 / 11월 2일 : 더 블루 - 그대와 함께(3주 연속 1위)

 

 

 

KBS 미니시리즈 느낌의 오프닝입니다. 손지창, 김민종, 이정재가 주인공 3형제를 맡았고 이본, 우희진, 류시원 등 당시의 청춘 스타들이 대거 출연했습니다. 더 블루는 손지창과 김민종의 듀오로 이외에도 1집의 '너만을 느끼며'가 인기를 끌었으며 이 두 곡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도 수록되어 10대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11월 9일, 16일 : 구본승 - 너 하나만을 위해(2주 연속 1위)

 

 

 

스님이 길을 가다가 숫자 9를 봤습니다. 이걸 세 글자로 줄이면 뭘까요? 네, 정답은 구본승입니다. 무릎을 탁 치실 분이 많으시겠지만 당시에는 이런 유우머가 나름 먹혔습니다. 저는 허경환이 처음 나왔을 때 구본승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연기자로 시작해 예능과 가수로도 활동 영역을 넓히며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른 구본승은 허경환과 달리 187cm의 키에 근육질 몸매의 소유자입니다. 데뷔한지 1년도 안 되서 입대했지만 전역 이후에도 활발히 활동하던 구본승은 한 영화 이후 연예계 활동이 뜸해지는데요. 바로 여대생 김지은과 함께 출연한 희대의 괴작 '마법의 성'입니다. 김지은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현재 그녀는 강예원이라는 이름으로 종횡무진 연예계를 누비고 있습니다.

 

11월 23일, 30일 / 12월 7일, 14일, 21일 : 신승훈 - 그 후로 오랫동안(5주 연속 1위, 골든컵)

 

 

중간의 깨알같은  '<연예가 중계> 진행 : 이본'

 

발라드의 황제 신승훈의 4집 타이틀 곡입니다. 통산 4번째 골든컵 수상 곡이자 마지막 골든컵 수상 곡입니다. 김지호는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리게 되고 본격적으로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94년 겨울에 온 거리에 울려 퍼질 정도로 인기가 있었음에도 이 곡때문에 2위에 머무른 전설적인 곡이 있습니다. 증권맨이기도한 가수가 가요톱10에 딱 한 번 출연했던 당시의 영상으로 포스팅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5분 20초부터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