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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음감대♬/음치, 두둥칫

음치, 두둥칫의 기타리스트 이야기 :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안녕하세요. 음치, 두둥칫입니다.
우선 제가 앞으로 적을 글의 주제는 기타리스입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전자기타의 경우 1930년대부터 시작되었고, 통기타나 클래식기타는 그보다 더 오래 되었죠. 이렇게 오래된 기타의 역사만큼 많은 노래들에서 기타소리의 중요하게 쓰이는데요. 최근 일렉트로닉 장르의 음악 이전까진 피아노와 더불어 대중음악의 멜로디를 연주하는데 많이 쓰이고 있죠. 록음악에서 기타와 기타리스트의 중요성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듣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거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수많은 노래들에서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는 기타영웅들에 관해 제 짧은 지식으로나마 써나가겠습니다.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본명 James Marshall Hendrix. 아마 기타를 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물론 노래를 많이 듣는 사람도 그의 이름이나 사진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Rolling Stones지를 비롯하여 여러 차트에서 매번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기타의 신(神)으로 불리는 영원한 No.1 Jimi Hendrix다.

1942년 시애틀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님의 이혼과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다. 10대때 밴드를 만들어 기타를 쳤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 부상으로 조기 전역한 그는 리들리처드(Little Richard)의 백밴드로 활동하다 영국으로 건너간다.

 

 

베이시스트 노엘 레딩(Noel Redding), 드러머 미치 미첼(Mitch Mitchell)과 함께 밴드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The Jimi Hendrix Experience)를 만들어 활동한다. 그리고 1967년 데뷔 앨범 <Jimi Hendrix Experience>를 발표한다. 첫 앨범 활동과 함께 단번에 주목을 받는다. 첫 앨범에는 <Hey Joe>, <Foxey Lady>, <Purple Haze>등 지금도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이 카피하는 명곡들이 들어있는 불후의 명반이다. 앨범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헨드릭스는 몬트레이 팝 페스티벌에 참여한다. 여기서 그는 그 유명한 기타에 불을 지르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당시 크림으로 활동하던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은 몬트레이에서 헨드릭스의 무대를 특정행위를 연상시키는 행동이나 의식을 치르는 듯한 퍼포먼스, 환상적인 연주와 앰프에 다가가 하울링을 생기게 하는등 충격적인 무대였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하였다.

 

 

 

 

몬트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록 팬들에게 자신을 확실히 각인시킨 헨드릭스는 같은 해 두 번째 앨범 <Axis : Bold As Love>를 발표한다. 이 앨범 또한 많은 명곡들이 들어 있는데 그 중 <Little Wing>은 지미 헨드릭스를 동경한 스티비 레이본(stevie ray vaughan, SRV)이 리메이크하여 원곡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1968년 세 번째 앨범이자 생전 마지막 앨범이 된 <Electric Ladyland>를 발표한다. <Voodoo Child>,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의 사랑을 받는 노래이자 지미 헨드릭스를 대표하는 곡이며 델타블루스의 정수를 보여준 이 곡을 포함 역시 많은 명곡들이 실려 있다. 그 중에서 <All Along The Watchtower>는 원래 밥 딜런(Bob Dylan)의 곡이나 헨드릭스의 리메이크로 그의 버전이 더 유명해진 곡이다. 앨범의 성공과 함께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는 많은 공연을 하였으나 1969년 2월 해산하게 된다. 

 

 

 

 

 

이 후 헨드릭스는 스튜디오에서 연주와 새로운 사운드를 연구하며 지냈다. 그리고 1969년 6월 록 역사상 가장 유명한 페스티벌인 우드스탁 뮤직페스티벌에 올라간다. 지미 헨드릭스의 존재감을 또 한 번 드러낸 공연이었다. 이 무대에서 그는 미국 국가를 연주하는데 퍼즈와 코러스 등의 기타 이펙터를 사용하여 전투기 소리 같은 굉음을 내며 연주한다. 이는 당시 있었던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연주를 히피의 성지였던 당시 무대에서 선보였다. 우드스탁페스티벌 후 밴드 오브 집시즈(Band Of Gypsys)를 결성하였으나 오래가지 못한다. 1970년 9월 18일 지미 헨드릭스는 영국 런던 노팅힐에 있는 여자 친구의 집에서 약물중독에 의해 사망하게 된다. 당시 그의 나이 27살 이다.

 

이렇게 짧은 활동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의 연주력에 있다. 어린 시절부터 리들 리처드, 비비 킹(B.B. King), 알버트 킹(Albert King)등 블루스의 전설들과 같이 작업하면서 블루스에 뿌리를 둔 연주를 하였다. 또 현재 기타리스트들이 사용하는 거의 모든 주법들을 당시에 선보였다. 기타의 지판을 집는 손으로 계속해서 기타줄을 튕기는 풀링-오프가 대표적이다. 또 그는 기타소리에 이펙터들을 많이 사용하였다. 주로 사용한 것들이 Fuzz Face(Distortion), Cry Baby(Wah Wah), Uni-Vibe(Chorus/Vibrato)이다. 그 밖에도 기타를 앰프에 가져가 하울링을 일으키는 피드백 주법도 있다. 기타 주법들만큼 그를 돋보이게 한 것이 무대에서의 퍼포먼스였다. 기타를 등 뒤나 머리 뒤에 돌려놓고 연주를 한다거나 이빨로 물어뜯어 연주를 하였다. 심지어 기타를 불에 태우기까지 하였으니 그의 무대매너는 타의 추종을 불허 했다.

 

 

 

 

흑인이었던 지미 헨드릭스가 록음악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것 또한 상당히 고무적이다. 비록 블루스에 뿌리를 둔 음악이지만 거의 모든 록 음악이 백인들에 의해 불리어졌기 때문이다.

지미 헨드릭스는 깁슨의 레스 폴이나 플라잉 브이등의 기타도 사용하였으나 그의 가장 대표하는 펜더의 스트라토캐스터이다. 재미있는 점은 헨드릭스는 왼손잡이였으나 왼손잡이기타를 사용하지 않고 오른손잡이용 기타를 거꾸로 잡고 연주했다는 것이다.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이 동경하고 그의 곡과 연주를 따라 한다. 그의 얘기가 나오면 서로 한마디씩 하며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그는 기타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가 죽은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듣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그가 들려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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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graphy

 

Studio Album

 Are You Experienced (1967)
 Axis: Bold as Love (1967)
 Electric Ladyland (1968)
 Valleys of Neptune (2010) [앨범 발매 예정이던 미공개곡 모음]
1970* First Rays of the New Rising Sun (1997) [앨범 발매 예정이던 미공개곡 모음]

Live Album

 Live at Monterey (1967)
BBC Sessions [2CD] (1967)
 Winterland [4CD] (1968)
 Live at Woodstock [2CD] (1969)
 Live at the Fillmore East [2CD, Live in Band of Gypsys] (1969)
 Live at Berkeley (1970)
Blue Wild Angel: Live at the Isle of Wight [2CD] (1970)